거짓말쟁이와의 티타임

[아카히로] 거짓말쟁이와의 티타임 in NY (1/2)

Unknown with RSB 2020. 12. 29. 23:45

*아카이 슈이치(영국인, FBI)x모로후시 히로미츠(파티쉐)가 연애하는 이야기입니다 :)

*동기조 전원 생존 if

*아카이는 검은 조직에 허니트랩으로 잠입하지 않았습니다.. & 조디와 아카이는 사귀지 않습니다. 아카이의 기수가 캐멀과 조디보다 높아 선배에요.

*등장하는 모든 단체와 설정은 현실과 아무런 관계도 없음을 밝힙니다.

*이탤릭체는 영어입니다.








히로미츠는 펜을 인중에 올리고 배 위에 손을 모으고는 의자에 눕듯이 기댔다. 의자는 그가 기대는 대로 눕혀져 거의 수평처럼 보였다. 바깥은 지나가는 사람, 아니 지나가는 고양이 한 마리 보이지 않는 한적한 시골 풍경이다.

창밖에 벚꽃이 봄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렸다. 히로미츠는 좁은 경찰서 안에서 히터만 쐬며 며칠째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어~이, 모로후시군. 오늘 순찰 돌고 오지?"

"네~에."


히로미츠는 경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포함해 단 둘이 근무하는 이 시골파출소에 히로미츠가 오게 된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내부고발. 도쿄 경시청 수사 제2과로 발령받은 히로미츠가 경제범죄를 다루다가 높으신 분을 건드린 게 문제였다.

물론 히로미츠가 그를 검거하는데 실패한 건 아니다. 발령받은 지 일 년도 되지 않은 풋내기가 훌륭하게 증거를 잡은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증거는 경시청의 높은 분과 관련이 있었다. 독단적 수사는 폐쇄적인 공무원 사회에 반기를 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히로미츠는, 딱히 그런 수직적 위계질서에 관심이 없었다.

윗선에선 이미 히로미츠를 눈여겨 보고 있었다. 좋은 의미는 아니다. 그의 형이 이미 나가노에서 또라이로 유명했기 때문에. 오죽하면 도쿄 경시청에서 "아 그 또라이 동생?" 하면서 인사를 받아주는 상사들도 꽤 있었다.

어쨌거나 언론까지 뒤집어가며 화려하게 터뜨린 뒤, 남은 것은 내부고발자란 명칭과 지방발령이었다. 공무원 사회에서 파면과 해임은 받지 않았으니 그래도 안전선에 들었을지도 모른다-그럴 명분도 없었지만-.

그러나 히로미츠의 윗선은 그의 형도 모자라 히로미츠까지 이 평화로운 동네를 어지럽히고 다니길 원하지 않았다.

그가 지방에 발령받고 몇주도 지나지 않아, 이 곳은 댐 건설로 인한 수몰 지역으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이 두 명-히로미츠와 한 분의 지역출신 경관님-은 무한 대기발령될 예정이다.

히로미츠는 자전거로 시골 마을의 열가구도 안 되는 곳을 일일이 확인했다. 첫날, 다들 히로미츠를 보고 무슨 이유인지 알법하다는 표정을 지으시고는, 영락없는 손자 취급이다.


"아직도 할 일을 못 정했어?"

"아이고, 영감은, 이 어린애 잡을 게 어딨다고 그래요? 사람이 어려서 방황도 좀 하고 그러는 거지. 지나 잘할 것이지!"


히로미츠는 그저 실실 웃으며 "할아버지~ 어깨 주물러 드릴까요~?"라며 넉살 좋게 할아버지의 어깨를 잡았다. 그런 히로미츠에게 결국 이 동네 주민들은 이미 푹 빠져서, 도쿄로 가면 연락하라고 연락처도 주고받은 지 오래다.

히로미츠는 일주일 후면 떠날 동네의 풍경을 바라보며,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고민했다. 형은 네가 좋아하고 재능있는 쪽을 살려보는 게 좋겠다며 히로미츠에게 충고했다. 정론으로 밀어붙이면 복귀야 가능하겠지만, 그의 형도 상황이 좋진 않았다.

그리고 그의 형은 동생이 자신과 똑같이 힘든 길을 가길 원하지 않았다. 그는 동생이 돌아가도 아무런 수사도 진행할 수 없으리란 걸 알았다. 형사에게 수사에 끼워주지 않는 식의 이지메를 동생이 견디는 게 싫었다.

이미 경찰학교를 다닐 때 형제의 원수도 잡았다. 덕분에 히로미츠는 경찰이 될 사명감을 얻었다. 그러나 사명감만으로 공무원 사회에서 적응할 수는 없다. 꿈과 이상을 쫓기엔,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히로미츠는 풀벌레가 우는 연못위로 물수제비를 던졌다. 물수제비는 몇 번 물 위를 건너다, 그의 한숨처럼 물 아래로 사라졌다.








"이야~ 이게 얼마 만이야? 도쿄 경시청의 대스타님 오셨네~!"

"시골은 지낼 만 했어? 얼굴이 쫙 폈네."

"대스타는 무슨, 이제 무한대기발령인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모임은 늘 그랬듯 시끌벅적했다. 히로미츠는 그런 친구들의 어깨를 한 번씩 두드리고 자리에 앉았다.


"다들 너무 그러지 마라. 여기 술 한잔 받아, 모로후시."

"그래도 나 챙겨주는 건 반장뿐이네. 사랑해, 반장!"


히로미츠가 다테에게 엉겨 붙자 다테가 질색하며 그의 얼굴을 밀어냈다.


"오 저런~, 모로후시쨩이 금단의 사랑을 꿈꾸는군~. 걘 이제 유부남이라고~."

"이걸 제로가 봤어야 되는데, 혼자보기 아깝군."

"후루야는 해외발령이라 여전히 연락이 잘 안 되지?"


히로미츠는 술을 한 번에 마시고는, 다테의 질문에 긍정했다. 후루야는 일 년 전 해외발령으로 일본을 떠났다. 따로 히로미츠를 만나 무얼하든 응원하겠다는 말을 남긴 뒤였다. 그게 꼭 그와 같은 길이 아니더라도, 어디에서든 넌 잘 할 거라 믿는다는 말과 함께.


"모로후시쨩. 내가 이런 말 하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사람이 재능있는 일로 돈을 버는 것도 쉬운 일은 아냐. 그런데 넌 이미 잘하는 일이 있잖아."

"내가?"


내내 장난스럽던 하기와라의 진지한 말에, 히로미츠도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런 그를 본 마츠다가 한마디 보탰다.


"난 히로의 디저트가 좋아. 행복의 맛이야."

"마츠다 취한 것 같은데."


혼자서 자작하던 마츠다의 끼어드는 말에, 하기와라와 히로미츠가 서로를 보았다. 다테는 이미 신혼인지라 돌아간 터였다. 그도 수사과의 분위기를 아는지라, 히로미츠에게 구태여 돌아오라 권하진 않았다.

그게 오히려 사망선고 같아서 히로미츠는 울적해졌다. 생각해보면, 히로미츠와 공무원이란 안 맞는 짝이었다. 애초에 규율이 빽빽하고 상명하복에다 평생 주어진 업무만 하면서 사는 것도 싫었다. 수사를 못하는 형사는 사실 손발이 잘린 벌레보다 못하니까.

그렇게 쓰린 속을 달래려 달리다 보니 어느새 서로 취한지도 모르는 상태였나보다.


"모로후시. 아니, 히로. 꼭 사람들을 구하는 삶만 중요한 게 아니야. 너는, 사람들이 웃는 걸 더 좋아한다고 생각해. 네 디저트가 그래. 먹으면 행복해지거든. 그러니까 내 말은-"


그리고 마츠다가 얼굴을 테이블에 박으려는 걸 히로미츠가 막았다. 하기와라와 히로미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한 소리를 하고 난 뒤면 마츠다는 기절하는 술버릇이 있었다.


"나도 동의해. 행복의 맛이 뭔진 모르겠지만, 넌 디저트는 끝장나게 잘해. 진지하게 생각해봐."


그리고 히로미츠가 바로 프랑스행 티켓을 끊은 걸 안 친구들이 기절하고, "그렇다고 외국으로 가라고 한 적은 없어, 이 미친 놈아!"라며 공항에서 배웅받으며 혼나기까지 보름 남은 밤이었다.

1년 모은 월급으로 대출까지 낀 히로미츠는 프랑스의 제과학교에서 2년, 프랑스 호텔에서 막내로 1년 근무했다. 학교에서 1년은 장학생으로 보내 빚은 생각보다 빨리 정리할 수 있었다. 정신없는 3년을 보내고 나니, 프랑스 호텔에서 파트너로 일하던 선배의 스카웃으로 미국의 맨해튼으로 가게 되었다.










그렇게 뉴욕에서의 가게 오픈 첫날이었다. 히로미츠는 아침 거리를 걸으며 들떴다. 가게는 센트럴파크에서 조금 떨어진, 어퍼 이스트 사이드 구석에 있었다. 관광지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주민들이 아니면 잘 알지도 못하는 거리였다. 

조금 들떠서 걸었는지 로퍼가 도로의 파인 홈에 걸렸다. 히로미츠는 앞으로 넘어지는 몸을 바로 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발목이 꺾였다. 운이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넘어질 각오로 낙법 자세를 취하려는데 누군가가 자신을 급하게 잡아챘다. 

결코 작은 키도 체격도 아니기에 놀란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니, 선글라스를 낀 긴머리의 남자였다. 키는 자신보다 그리 크지 않은데, 체격마저 밀리지 않는 동양인이라니 특이한 사람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


눈이 안 보여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히로미츠는 뻘쭘해졌다. 이제 슬슬 놔줘도 될 것 같은데 팔을 잡은 손이 떨어지질 않았다. 넘어지지 않으려다 보니 남자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었다. 히로미츠는 어색하게 웃으며 남자의 손을 떼어냈다. 

외국으로 온 이후, 단 한 번도 히로미츠는 죄송하단 말에 답을 못 들은 적이 없었다. 히로미츠는 남자에게서 뒷걸음을 치며 멀어진 후 뛰었다. 비니에다 긴 머리라니, 정말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 가게에 캐멀이 온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는 아침 조깅 중이었다. 늘 뛰던 거리에 새로운 가게가 생겨서 신기했다. 마침 가게 앞을 청소하러 나온 히로미츠가 그를 보았다. 


"안녕하세요~! 운동 중이신가 봐요?"


히로미츠가 웃으며 인사했다. 캐멀은 그 순간 자신의 심장이 쿵, 하는 것을 느꼈다. 그가 심장을 잡고 물음표를 띄울 때였다.


"...? 물이라도 드릴까요?"


캐멀은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히로미츠를 따라 들어갔다. 가게는 복층에 우아한 인테리어의 디저트 카페였다. 평수는 넓지 않아 세 테이블 정도만 있었다. 그중에서도 의자가 2개인 테이블이 둘이었다. 얼핏 봐도 굉장히 사적인 분위기였다. 캐멀은 가게를 둘러보며 약간 기가 죽었다.


"제가 운동 중이었어서, 이런 차림인데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캐멀이 땀에 젖은 트레이닝복을 가리키며 물었다. 히로미츠는 검은 에이프런을 타이트하게 매며 캐멀을 돌아보았다.


"주문납품 위주라 평소에는 적적해서요. 그렇게 긴장 안 하셔도 돼요."

"그...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부탁드립니다."

"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히로미츠는 캐멀에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캐멀은 꽉 매어진 히로미츠의 검은 앞치마를 보며 왜인지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혀를 델 뻔했다.

그렇게 캐멀은 가게의 단골이 되었다. 그가 단골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FBI에 캐멀이 커피를 마시며 미친 사람처럼 웃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참다못한 조디가 그 멍청한 얼굴 좀 치우라고 말했지만, 히로미츠의 가게가 둘의 아지트가 된 건 금방이었다. 

조디는 아카이 이외의 남자를 보고 첫눈에 휘파람을 분 건 단언컨대 히로미츠가 처음이었다. 그건 그저 반사적인 휘파람이었다. 물론 히로미츠는 부끄러워했지만. 예쁜 걸 보고 감탄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사람이지. 

특히 조디는 히로미츠의 눈매가 좋았다. 무표정하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면 새침하던 눈이 접혀 날렵하던 얼굴이 청량한 여름 바다의 일렁이는 파도 같았다. 

성애라기보단 치유에 가까웠다. 어쨌든 그들은 늘 임무수행 중이었고, 풀리지 않는 긴장감과 피로가 늘 함께했다. 범인을 쫓는 것은 사명감과 의무이지 즐거움이 아니다. 

물론 즐거움도 느끼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아카이라거나 아카이거나 아카이라든지- 그건 사람이 아니니 제외다.






"최근 단골 커피숍이 생긴 모양이지? 일반인한테 민폐 안 끼치게 조심해."


그리고 그들은 아카이에게 얼마 지나지 않아 경고를 받았다. 둘이 아침에 커피를 들고 출근할 때마다 같은 로고이니 눈에 안 띌 리가 없다. 눈썰미는 좋아도 웬만하면 잔소리 하지 않는 아카이가 한마디 할 정도면 소문이 어지간히 난 모양이다. 아니면 그만큼 눈에 띄었던지.

조디는 그럼에도 약간 기분이 상했다. 모든 사람이 아카이처럼 일을 강박적으로 하는 건 아니다. 하여간 선배들이란 후배들이 조금이라도 숨통 트이는 걸 용납 못 하는 법이다.


"뭘 걱정하는진 알겠지만, 여긴 자주 문 열지도 않아. 오죽하면 문 열 때를 문자로 받아서 간다고."

"그래서, 너희들이 FBI인 건 아나? 보아하니 출근할 때 일반 옷을 걸치고 오던데."


그 말에 조디는 입을 다물었다. 캐멀과 그녀는 히로미츠에게 자신의 신분을 일부러 감추고 있었다. 뉴욕에서 FBI가 신분을 감춘다니 누가 들어도 이상한 소리다. 하지만, 그녀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대해주는 히로미츠의 상냥함을 잃고 싶지 않았다.

대중에서 비치는 FBI의 이미지나, 경찰을 껄끄러워하는 일반 사람들을 잘 안다. 그녀는 친구가 되고 싶었다. 일반 시민과 경찰 사이의 미묘한 거리감을 히로미츠에게서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치만, 히로는 진짜 열심히 살았어. 3년 전에 혼자 프랑스에 제과학교로 가서 이제 미국에서 파트너로 가게를 열었어. 그런데 주문납품 위주라 가게 손님도 별로 없고, 이 넓은 맨해튼에서 혼자 살아서 친구도 별로 없다구."


그 말에 아카이는 질렸다는 표정이었다. 조디가 물고 늘어지는 것이 의외기도 했다. 옆에서 캐멀도 뭔가 긍정하는 표정인 게 탐탁찮았다. 그는 후배들의 묘한 반항에 말을 못 알아들을 이들이 아니니 알아서 처신하겠거니, 생각했다.


"어찌 됐건 너희들 수사에 일반인이 말려들지 않도록 신경 써."

"Roger that."


둘은 불만스런 표정이었지만 알아들었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렇게 끝난 줄 알았는데, 며칠 후 아카이는 아침 회의 시작 전 몰래 사인을 주고받는 둘을 눈치챘다. 


"다들 피곤하죠~! 저랑 캐멀이 가서 커피 사 오려는데 필요하신 분 말씀하세요~."


조디가 생글거리며 입을 열자 전날 야근한 좀비들이 하나둘씩 손을 들었다. 야간 순찰을 돌고도 급하게 터진 마약 건 때문에 서를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카페인마저 마약이었다면 못 버텼을 거라며 울고 있었다.

아카이는 동료들의 주문을 받은 종이를 들고 룰루랄라 서를 나서는 둘을 따랐다. 둘은 자동차에 탄 후 뒷좌석에 올라타는 아카이를 보고 뜨끔한 표정이었다.


"아카이씨. 주문이 있으시면 저희가 받아서 가면 될 텐데요..."

"얼마나 대단하길래 선배 말도 씹고 가는지 궁금해져서 말이지. 당장 출발해."


앞 좌석 사이로 몸을 기울이며 둘에게 살벌한 공기를 날리는 아카이에게 조디가 "아니 우리가 커피 사러 가는 거지, 범죄자 잡으러 가나."라며 구시렁거렸다. 그 와중에 겉옷을 챙긴 둘을 보며 아카이는 안전벨트를 맸다.







"앗, 두 분 오랜만이시네요~!"

"히로, 잘 지냈어요? 요새 주문 많아서 힘들다며 몸은 좀 괜찮아요?"

"체력으론 안 지는 편이에요. 그런데 이 분은...?"


히로미츠는 며칠 만에 만난 둘을 반가워하며 포옹했다. 조디와 캐멀도 히로미츠를 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그렇게 둘과 포옹하고 후에 보이는 새카만 인영에 움찔했다. 

그 순간 아카이는 혼란스러워하는 중이었다. 한 달 전쯤인가 이 근처에서 만난 남자였다. 얼굴이 취향이라 그냥 쳐다봤는데 도망갔던 그 사람. 그 이후 가끔 생각은 났지만 일이 바빠서 인연이 아니려니 하고 넘겼었다.

멀리서 아침 햇빛 아래 청소하던 남자는 조디와 캐멀을 보고 반가운 미소로 인사했다. 안 웃을 땐 고양이 같더니, 웃으니 이 거리의 모든 햇빛이 그를 위한 조명같았다. 아카이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아카이 슈이치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어, 일본인이세요? 전 모로후시 히로미츠라고 해요."

"그럼 일본어로 말해도 되겠군요. 전엔 잘 돌아가셨었나요?"


갑자기 악수를 청하는 아카이의 손을 가볍게 잡으며 히로미츠가 자기소개를 했다. 히로미츠는 갑자기 일본어로 말을 거는 아카이에게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활짝 웃었다. 관광객도 잘 오지 않는 거리라 모국어를 들은 게 너무나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꽃망울이 터지는 것 같은 미소에 나머지 세 사람은 격침 중이었다.


"세상에, 일본어를 듣는 건 너무 오랜만이에요! 아니, 일본인이신데 FBI신 거에요? 대단하시네요!"


그 말에 조디가 황급히 아카이의 옷차림을 봤다. 와우, 이 또라이 같으니! 내가 겉옷 챙기는 거 보고도 이 차림으로 따라왔잖아! 조디는 이 늦봄에 일부러 정체를 감추려했던 자신의 노력이 산산이 흩날리는 걸 보았다.

게다가 평범한 회사원인 척 하느라 일본어를 쓰지 않았던 게 이렇게 될 줄은. 조디와 캐멀은 아카이의 의기양양한 모습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아니, 이름이 그럴 뿐 저는 미국인... 아니 영국인입니다. 사정이 있어서 미국시민권을 얻었습니다."

"아, 영국인이시...라고요? 그러시구나... 일본어를 잘하시네요."


히로미츠는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조디는 옆에서 아카이를 비웃고 있었다. 그렇게 날 세우더니 이렇게 얼굴 한 번 보고 넘어갈 것을 괜히 고생했다. 

진작 데려왔으면 잔소리는 안 들어도 됐는데. 거기다 이 꼴은 또 뭐람. 아카이는 영락없는 첫사랑에 빠진 하이틴처럼 굴고 있었다.

히로미츠가 그제까지 아카이에게 잡혀있던 손을 빼려는 순간이었다.


"가게가... 잘 안 연다고 들었습니다."

"네... 아무래도 프리오더로 운영되니까요. 좀 외로웠는데 최근엔 캐멀씨랑 조디씨 덕에 나아졌어요."


히로미츠는 손이 붙잡힌 채로 조디와 캐멀을 보며 미소 지었다. 둘은 감동받아 히로미츠를 보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리고 아카이는 약간 속이 상했다. 어디 가서 얼굴로 밀린 적이 없는데, 내가 캐멀보다 무섭게 생겼나? 꼼지락거리며 빼려는 히로미츠의 손가락을 보던 아카이가 빙긋 웃고는 휴대폰을 내밀었다.


"단골하고 싶습니다. 번호 부탁드립니다."

"커피는 그렇다 쳐도 디저트 카페인데요?"

"제가 당중독이라서요."


그 말에 히로미츠는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번호를 눌러주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걸어 확인하는 아카이에 조디는 불길함을 느꼈다. 캐멀을 보니 그도 심상찮음을 느낀 것 같았다.

FBI내에서 아카이의 별명은 독사였다. 이 침착하고 집요한 남자는 목표한 바는 반드시 완수하는 면이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엔 그 목표가 히로미츠인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