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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카히로] 거짓말쟁이와의 티타임 in Tokyo (1/2)
    거짓말쟁이와의 티타임 2020. 12. 29. 23:48

    *스포주의 : 오키야 스바루의 정체, 히로미츠의 어린시절 트라우마






    히로미츠는 흩날리는 벚꽃에 도쿄로 돌아온 것을 실감했다. 그는 원래의 계약대로 2년을 꼭 채우고 돌아왔다.

    파트너는 히로미츠의 결정에 아쉬워했지만, 지난 1년간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알아서 잡지 않았다. 히로미츠는 의무감으로 뉴욕에서의 시간을 버텼다. 덕분에 돈은 충분히 벌었다. 형과 친구들도 얼굴 잊어버리겠다며 성화였다.

    후루야가 5년이 넘도록 연락이 안 되는 건 의외였다. 하지만 소꿉친구라고 해서 어른이 되어서도 연락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서로 삶이 바쁘다 보면, 자연스레 연락이 끊기기도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몇 달 쉬면서 찾아낸 이 가게는 조그맣고 아기자기해 맘에 들었다. 혼자서 하는 카페라 크게 할 생각이 없었고, 주문은 여전히 인스타나 페이스북으로 소소하게 정해진 수량만 받았다.

    히로미츠는 최근 구한 아파트 옆집을 지나가다 화단에 물을 주는 어떤 남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꽃이 예쁘네요~. 기르시는 건가요?"


    히로미츠는 아무 생각 없이 화단으로 가까이 갔다. 멀리서 봤을 때도 예뻤지만, 가까이서 물기를 머금은 꽃들은 여름 아침의 햇살에 더욱 선명해 보였다. 히로미츠는 저도 모르게 웃으며 남자를 돌아보았다.


    "제가 꽃을 좋아해서요."

    ".......아... 네..."


    히로미츠는 뒷걸음질 쳤다. 뒷모습일 때는 몰랐는데, 눈이... 실눈이었다. 앞이 보이기는 하는 걸까? 거기다 목티라니, 이 여름에요? 아무리 아침이라 서늘한 기운이 있지만, 그렇다고 목티에 실눈이라니 수상쩍어도 너무 수상쩍었다.


    "최근 이사 오셨나 봐요. 처음 뵙네요. 전 오키야 스바루라고 합니다."

    "네, 이 근처에 새로 카페를 열었거든요. 저는 모로후시 히로미츠에요. ...언제 한 번 놀러 오세요."


    히로미츠는 매고 있던 크로스백의 끈을 잡으며 고개를 짧게 숙였다. 그대로 떠나려는데 오키야가 따라와 같이 걷기 시작했다.


    "잘됐네요. 제가 카페인 없이는 못 사는 대학원생인데, 저도 최근에 이사 와서 마땅한 카페가 없나 했거든요."

    "바쁘실 텐데... 아직 오픈하지도 못해서... 아! 혹시 샌드위치라도 드실래요? 가게에 전날 만든 게 남아있을 거에요."


    남자는 어쩐지 샌드위치란 말에 반응하는 듯했다.


    "친절 감사드립니다."

    "학생이시니 돈은 안 받을게요."


    둘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둘 다 타지에서 살다 온 공통점이 히로미츠가 그에게 친숙함을 느끼게 한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나 그가 살았던 아파트가 불에 타서 이후로 쿠도 저택에서 머무른다고 했다. 그렇게 끝날 줄 알았던 인연인데, 오키야가 카페에 얼굴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호오... 이건, 크림브륄레군요."

    "맞아요. 방문 손님께만 드릴 수 있는 거죠."


    오키야는 조심스레 얇은 막을 톡톡 두드렸다. 갈색의 캐러멜이 얼음이 깨지듯 살며시 무너졌다. 그대로 캐러멜 조각과 차가운 커스터드 크림을 함께 떠 입에 넣었다. 맞은 편에 긴장하며 앉아있던 히로미츠가 오키야의 미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따뜻하고 얇은 캐러멜이 차가운 크림과 아주 잘 어울리네요. 설탕도 안 씹히고. 밀크티와도 조합이 나쁘지 않아요. 그런데 왜 여기서만 먹을 수 있죠?"

    "오래 보관하면 캐러멜이 녹아서 크림브륄레가 아니라 푸딩처럼 되는 걸요. 오키야씨, 항상 평가 고마워요."


    오키야는 긴장이 풀려 의자에 몸을 기댄 히로미츠를 보고 오른손으로 테이블 위에 턱을 괴었다. 그는 왼손으로 다시 크림브륄레를 한입 먹었다. 남은 테이블 자리에는 공대 논문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해하기 힘드네요. 항상 잘 하시는데 왜 제 평가를 이렇게 기다리시죠? 전 잘 오지도 못 하는데요."

    "... 오키야씨, 최근 5일 중 3일은 오고 계시는데요."


    어이없어하는 히로미츠의 말에 안경을 검지로 올린 오키야가 헛기침을 했다. 그런 오키야를 히로미츠가 미소 지으며 바라보았다. 남자는 그의 미소에 왼손에서 굴리던 스푼을 멈칫했다.


    "글쎄요. 뉴욕에서 항상 받던 피드백에 비하면, 일본은 너무 정적이라 그럴지도요. 가끔 제가 정말 잘하고 있는 건지 헷갈리거든요."

    "모로후시씨는,"

    "?"


    오키야는 더 말을 잇지 않았다. 둘만 있는 가게에 에어컨과 냉장고, 라디오 소리만 울렸다. 히로미츠는 기분 탓으로 넘겼던, 몇번이고 겪었던 침묵 속의 열기를 읽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버린 히로미츠를 오키야는 붙잡지 않았다.


    "시간 뺏어버렸네요, 미안해요. 그럼, 맛있게 드세요!"


    그대로 오픈 키친으로 들어가는데 뒤가 뚫어질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오키야가 무슨 일이냐는 듯 빙긋이 웃고 있었다. 히로미츠도 마주 웃으며 다시 일로 돌아갔다.

    히로미츠는 오키야의 저런 면이 가끔 불편했다. 꽤 친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속을 절대 보여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눈동자가 보이지 않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을 수도 없었다.

    가끔 둘만 있는 카페에서 전신을 훑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설마, 일본에서? 히로미츠는 지나친 생각이라며 자신을 타일렀다. 그 점만 빼면 오키야는 좋은 손님이자 친구였으므로.







    히로미츠는 이 동네에 카페를 오픈하고 종종 이상한 살기를 느꼈다. 가끔 총이 있던 미국보다 위험한 느낌을 받았다.

    왠지 아이스 음료를 뜨겁게 내주면 살해당할 것 같았다. 그래도 한때 형사였던 감인 건지 아니면 이상한 상상인 건지. 히로미츠는 고개를 저어 상념을 없앴다.

    그 사이에 단골도 몇 명 생겼다. 소노코라는, 틈만 나면 스즈키 재벌 호텔에 스카웃 하려는 귀여운 여고생과, 그런 소노코를 말리는 란, 그리고 그 옆에서 매번 아이스커피를 주문하는 특이한 코난이란 꼬맹이. 별로 단 걸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아마 란을 좋아해서 굳이 따라오는 것 같았다.



    "아레레~ 전 커피만 시켰는데요."

    "응, 그러니까 비밀이야."


    코난은 앞에 놓인 아이스 커피와 딸기가 올라간 흰 아이스크림에 히로미츠를 보며 눈을 굴렸다. 그는 최근 정체를 알 수 없는 아무로가 껄끄러웠고, 마침 소노코와 란을 따라와 봤던 이 카페가 맘에 들었다. 코난은 히로미츠를 알았다. 5년도 전에 경제 사범을 잡아넣은 신참 형사.

    그런 그가 여기서 이젠 디저트 카페라니 역시 공무원이란 직업은 별로다. 탐정이 최고지. 코난은 팔지도 않는 디저트를 자신만을 생각해 만들어준 히로미츠의 성의를 생각해 한입 먹었다.


    "이거... 이튼 메스(Eton Mess)네요?"

    "셜로키언에게 주는 선물, 이라고 하자."


    코난은 자신이 읽고 있던 책을 봤다. 잠깐 셋이서 왔을 때 본 게 다일 텐데, 입맛을 간파당했는지 달디 달아야 할 이튼 메스가 담백했다. 코난은 아이스크림처럼 보이지만 입안에서 부서지는 머랭과 크림을 떠 먹었다.

    오키야가 몰래 다니길래 궁금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왠지 더는 파헤치면 안 될 것 같다. 코난은 아직 풀지 못한 버본과 아무로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며 여름의 한적한 카페에서 오랜만에 느긋한 독서를 즐겼다.







    어쩐지 평소보다 집요한 시선이 느껴져 히로미츠는 뒤를 돌아보았다. 바닐라 까눌레와 밀크티를 앞에 둔 오키야가 빙긋이 웃고 있었다. 왠지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히로미츠는 떨떠름하게 웃으며 고개를 까딱했다.


    "상상도 못 했네요. 형사분께서 이젠 파티쉐라니. 이 거리에 와서 아주, 많이, 놀랐답니다."

    "네에... 근데 그걸 꼭 제 뒤에 이렇게 바짝 붙어서 말씀하셔야 될까요?"


    코난인가. 처음 볼 때부터 알아챈 기색이더니. 히로미츠는 입꼬리를 올리려 노력하며 오키야에게서 멀어졌다.


    "제게 비밀이 많아 보인다고 하시더니, 모로후시씨야말로 생각도 못 한 행보셔서, 말이죠."

    "예에... 뭐어... 별거 아니니까요?"

    "저는 영락없이, 모로후시씨가, 원래 파티쉐가 목표였던 분인 줄 알았죠."


    물고 늘어질 기세라, 히로미츠는 한숨을 짧게 쉬고 오키야의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그제야 히로미츠를 따라 오키야도 앉았다. 왼손 검지로 안경을 한번 올린 오키야를 보며 히로미츠는 시선을 피했다.


    "전 사실, 하... 이런 얘기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어릴 때 부모님을 강도로 잃었어요. 범인을 잡고 싶었죠. 친구들의 도움으로 경찰학교 때 범인을 잡았어요."


    여전히 히로미츠는 왜 자신이 이런 이야기를 오키야에게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 이야기는 슈이치에게도 하지 않았다. 그는 힘들어하는 슈이치에게 짐을 더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지난 과거라, 상관 없기도 했다.


    "그래서 저번에 오키야씨가 일식을 가르쳐달라고 했을 때, 거절한 거에요. 전 식칼을 잘 다루지 못해요. 그게, 흉기였거든요. 다른 트라우마는 그나마 나아졌지만요. 그래서 파티쉐가 된 것도 있어요. 베이킹 도구들은, 남을 살해하기엔... 이해가 되나요?"


    오키야는 침묵했다. 그는 약간 충격받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래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모두 히로미츠의 미소를 보고 비눗방울 같은 행복을 보는 걸 알았다. 그는 그 연약한 행복들을 터뜨리고 싶지 않았다.


    "뒤는, 아시는대로. 형사가 되고 내부고발을 했죠. 무한 대기발령으로 더는 형사로서 버틸 수 없었어요. 그래서 잘하는 걸 하기로 한 거죠. 좋아하기도 하고요."


    오키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침울해 보였다. 히로미츠는 시무룩한 오키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는 얌전히 히로미츠의 손길을 받았다.


    "제가... 괜히 여쭤서 죄송합니다."

    "늘 뻔뻔하시더니, 이러는 거 정말 적응 안 되네요. 이제야 저보다 어려 보이네요, 오키야군?"


    히로미츠의 장난스러운 말에 오키야도 씁쓸한 웃음을 거뒀다. 히로미츠는 오키야의 어깨를 두드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키야는 그대로 돌아서는 히로미츠를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 바라보고 있었다.








    히로미츠는 최근 조디와 연락이 닿았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퍽 지쳐 보였다. 가볍게 포옹하고 자리에 앉은 그녀에게 히로미츠는 마카롱을 내주었다. 그녀는 마카롱을 내려다보다 한 입 깨물었고, 곧바로 울음을 터뜨렸다.

    당황한 히로미츠가 그녀의 옆으로 가 안아주었다. 조디는 히로미츠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그런 그녀가 진정하도록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히로미츠는 불길한 예감에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들어서는 안 될 것이 기다리고 있는 그런 예감. 어느새 떨고 있는 히로미츠의 손을 붙든 조디가 이를 악물었다.


    "히로, 잘 들어. 네가 전 연인이기 때문에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해."

    "......"


    히로미츠는 그럴 리가 없는데도 누군가에게 목이 졸리는 것 같았다. 심장이 불안하게 제멋대로 날뛰었다. 손에서 난 땀이 축축했다. 그는 진실을 들어야할지, 차라리 외면할지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떴다.


    "말해주세요."

    "슈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미안해..."

    ".......아니... 아니에요. 아니야..."


    히로미츠는 충격에 무너져내렸다. 그럴 리가 없다.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는데. 히로미츠는 조디를 안아주며 중얼거렸다. 아니야. 안 죽었어. 어디를 가든 잘 지내겠다고 했잖아. 아니야. 아니야.

    망연히 중얼거리는 히로미츠를 보며 조디가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그렇게 울지도 못하는 히로미츠를 한참 위로하고 떠났다.








    날이 더운데 입맛이 없어 하루에 한 끼만 며칠째 먹은 탓인지 조금 어지러웠다. 최근 들은 슈이치의 소식 때문이기도 했다. 도저히 먹을 게 넘어가지 않아서 레시피 연구를 위해 만든 디저트만 조금씩 먹었었다.

    히로미츠는 책장 구석에 욱여넣은 재료에 관련한 책을 꺼내려고 사투 중이었다. 과거의 자신은 도대체 힘이 얼마나 세서 저 구석에 한치의 여유공간 없이 책을 넣은 걸까. 며칠째 먹은 게 없어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다시 힘을 줘 책을 빼내는데 성공했지만 몸도 같이 기울었다.

    히로미츠는 재빨리 낙법을 취하려했지만 갑자기 발목이 꺾였다. 그런 날이다. 무엇을 해도 꼬이는 날. 그대로 바닥에 들이받으려는데 손바닥에 닿는 푹신한 감촉에 히로미츠는 실눈을 떴다.


    "조심성이 없네요, 모로후시씨."


    오키야였다. 히로미츠는 당황해 허둥거렸다. 거의 일주일 동안 한 끼만 먹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 무릎에 힘이 빠지려는 히로미츠를 오키야가 억지로 허리를 잡아 세웠다.

    히로미츠는 오키야의 힘에 붙들려 세워져 그의 어깨에 거의 몸을 기대고 있었다. 똑바로는 섰지만 너무 밀착된 몸에 히로미츠가 오키야의 어깨 위에 얹은 손으로 그를 밀어내려했다.


    "요즘 살 빠지셨죠?"

    "아... 제가 최근에, 하루 한 끼만 먹다 보니, 그래서 그런가 봐요."


    갑자기 붙여오는 말에 히로미츠는 밀어내려던 움직임을 멈췄다. 너무 피곤했다. 서 있는데도 쓰러질 것 같아 히로미츠는 눈을 감았다. 히로미츠는 점멸하는 시야에 저도 모르게 오키야의 어깨에 기대고 있었다.

    얇은 여름셔츠 위로 허리에 얹어진 손이 묘하게 어루만지는 느낌을 받을 때쯤 히로미츠는 오키야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어 근데... 오키야씨 심장이..."

    "그 하루 한 끼에 뭘 드시죠?"


    히로미츠는 묘하게 서늘한 목소리에 움찔했다. 하지만 곧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히로미츠가 아는 오키야라면, 선을 넘진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보통... 레시피 연구한 걸 먹겠죠?"

    "영양소라고는 탄수화물과 지방뿐인, 입만 즐거운 걸 몇날며칠 드신 거군요?"


    비꼬는 목소리에 히로미츠가 울컥해 대답했다.


    "그걸 일주일에 3번 이상 드시러 오는 분이 하실 말씀인가요?"

    "저는 삼시 세끼 다 먹고 입의 즐거움을 찾는 겁니다."

    "아 네~, 입이 즐겁긴 하셨나 봐요?"

    "당연한 거 아닌가요. 가치 없는 것들에 투자할 정도로 제 시간은 한가하지 않습니다."


    히로미츠는 오키야를 밀어냈다. 오키야는 언제 힘을 줬냐는 듯 쉽게 밀려났다. 언제라도 히로미츠가 밀어내길 기다린 것처럼. 선을 넘지 않을 거라고 믿었는데, 착각이었다. 저 혼자서 서로에게 선이 있다고 믿었나 보다.

    히로미츠는 오키야와 대화할 때 가끔 침묵 속에서 열기를 읽었다. 하지만 서로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게 암묵적인 선이라 생각했다.


    "저도 그래요. 저도 가치 있는 것들을 만들기 위해서 그런 거에요."

    "당신 몸이 망가지면!"


    가게에 노성이 울렸다. 처음 듣는 목소리에 히로미츠가 뒷걸음질 쳤다. 오키야도 자신이 과했음을 알고 머리를 쓸어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당신이 아프면... 많은 사람들이 슬퍼할 겁니다."

    "오키야씨도요?"

    "네?"

    "오키야씨도... 제가 아프면 슬플까요?"

    "당연한 말을..."


    오키야는 히로미츠의 씁쓸한 표정에 더 말을 잇지 못했다. 히로미츠는 말없이 쇼케이스에서 청포도 타르트를 하나 꺼내 세팅했다. 곧 아이스티와 함께 테이블 위에 올려진 타르트를 두고 오키야와 히로미츠가 마주 앉았다.


    "저, 사귀었던 사람이 있어요."


    오키야는 히로미츠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별다른 말없이 들어주었다. 고요한 카페에 에어컨이 작동하는 소리와 히로미츠의 목소리만 이어졌다. 히로미츠는 담담하게 슈이치의 이야기를 했다.

    뉴욕에서 처음 만났을 때, 비니를 쓴 그의 모습이 얼마나 이상했는지. 그런데도 너무 잘생겨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대했던 날들. 그리고 우연히 만났을 때 엉뚱한 모습이 귀여웠던 것들. 스며들듯이 사랑했던 시간들. 불안해하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해줄 수가 없어서 괜찮다는 말밖에 못 해줬던 못난 자신의 이야기를 오키야에게 들려주었다.


    "그랬는데, 어딜가든 잘 지내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그 사람, 바보같이 죽어버렸어요. 살아만 있으면 됐는데. 다시 만나지 못해도, 날 더는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았는데. 그런데 죽어버렸어..."


    히로미츠는 억눌렀던 울음을 터뜨렸다. 그 비 오던 뉴욕의 밤, 울며 기도했던 것들이 모두 부서졌다. 슈이치가 그리웠다. 좀 더 아껴줄 걸 그랬다. 힘들어하는 걸 알았는데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괜찮아질 거란 말밖에 못 해줬다.

    그럴 리가 없는데, 괜찮을 수가 없는데. 그 말 밖에 해 줄 게 없어서, 안아주는 것밖에 해줄 수가 없어서. 너무 미안해서 히로미츠는 오키야의 앞에서 눈물만 뚝뚝 흘렸다. 그리고 오키야는 그런 히로미츠를 품에 안고 토닥였다.


    한참 울고 난 후 머쓱한 표정을 짓는 히로미츠에게 오키야가 말했다.


    "만약 모로후시씨만 괜찮다면, 절 이용해도 좋아요."

    "...저 방금전까지 못 잊는 사람 있다고 운 건데요."


    코를 훌쩍이며 말하는 히로미츠를 보며 오키야가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이용당해도 좋고, 모로후시씨는 기댈 곳이 생기는 거니. 과실은 50:50이 되는 거죠."

    "...오키야씨가 손해만 보는 거 같은데 어떻게 50:50이란 계산이 되는 거에요? ...전부터 생각했는데 은근 손해 보시는 성격 같아요."


    그 말에 오키야는 턱에 손을 대고 약간 고민하는 척하다 히로미츠에게 코를 맞댔다. 놀란 히로미츠가 굳어있는데 오키야가 입을 열었다.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웠다.


    "지금부터 키스할 거에요. 싫으면 피해요."


    히로미츠는 눈을 감으며 오키야의 키스를 받아들였다. 눈물 때문인지 짠맛이 났다.








    이 기묘한, 연애라고 부르기엔 서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관계가 시작됐다. 히로미츠는 새삼 스바루가 없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온 것을 깨달았다.

    대학원생이란 말이 아주 거짓은 아니었는지 스바루는 종종 논문으로 바빠서 들리지 못하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계절이 바뀌고 더는 스바루의 목티나 목 끝까지 잠근 셔츠가 수상쩍어 보이지 않아질 때까지, 만난 것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가끔 만나는 날에는 묘하게 다크서클이 있었다. 안쓰러움에 히로미츠가 자신을 무릎 위에 앉히고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스바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스바루씨. 내가 뭐 해줄 건 없어요? 요즘 너무 지쳐 보이는데..."

    "아니 괜찮아요... 이렇게 안아주세요..."


    독특한 머리카락 색 때문인지, 커다란 리트리버 같기도 했다. 그게 사랑스러워 히로미츠가 스바루의 머리카락에 짧게 입을 맞췄다.

    그러나 고개를 든 스바루의 얼굴이 묘하게 억울한 표정이라, 히로미츠는 의아해하며 스바루를 안아주었다.

    히로미츠는 외국에서 5년을 보내는 동안 연애 속도가 빨라졌음을 알았다. 그래서 스바루가 놀라지 않도록, 일부러 진도를 늦추는 중이었다. 스바루도 억지를 부리진 않았다.

    그래서 히로미츠는 가끔, 자신이 고백한 날 때문에 이 무른 사람이 일부러 히로미츠의 옆에 있는 건지 종종 고민했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혹시 안쓰러움에 동성애에 거부감이 있는데도 옆에 있는 걸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문제일까? 히로미츠는 스바루에게서 슈이치의 흔적을 찾는 자신을 보았다. 그때마다 마음이 흔들렸다. 스바루가 왼손으로 글씨를 쓸 때, 무의식인지 입버릇인지 50:50이란 말을 할 때, 가게에서 매번 밀크티를 마시는 것조차 슈이치를 떠오르게 했다.

    예의가 아니다. 바로 앞에 둔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투영해서 보는 건 해선 안 될 짓이었다. 그런데도 그늘진 옆얼굴에서 히로미츠는 슈이치를 보았다. 그걸 없애려 부러 스바루에게 키스하기도 했다. 앞에 있는 사람을 봐야 한다고, 자신에게 되뇌면서.




    이튼 메스(Eton Mess)


    누구의 눈동자 색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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