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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이히로] Pretty Pretty Edit ver.
    단편 2022. 1. 16. 10:52

    레이는 잠을 자다 아래가 더워 미간을 찌푸렸다. 겨울이라 답답해도 어쩔 수 없이 입은 잠옷이 문제다. 히터로 아무리 온도를 올려도 서른이 되니 그 대단한 후루야 레이도 겨울에는 뼈가 시릴 때가 있었다. 20대 때는 한겨울 영하 15도에도 아이스 음료를 마시던 레이지만, 서른이 되자마자 그런 짓은 할 수 없게 됐다.

    자신의 몸을 막 쓰는 편인 레이지만, 자기관리의 화신이 감기에라도 걸리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히로미츠가 겨울 잠옷을 떠안겼다. 보기만 해도 땀이 날 것 같은 폭신폭신한 재질에, 곰이 큼지막하게 프린트 된 잠옷에 경기를 일으켰다. 하지만 히로미츠가 불시에 점검하러 올 거라 으름장을 놓아서, 연인을 실망시키고 싶진 않아 억지로 입고 잠들곤 했다.

    그러니까 내가, 안 입는다고, 했잖아, 히로...!

    미간을 찌푸리고 웅얼거리는데 밑에서 누군가 대답했다.


    "버-본. 여전히 건강하네."

    "...??"


    레이는 여전히 떠지지 않은 눈으로 생각했다. 히로다. 근데 언제 왔지? 아니 그것보다, 지금 날 버본이라고 하지 않았...나?



    팔꿈치로 상체를 반만 일으킨 레이는 혼란에 빠졌다. 히로미츠는 공안에 복귀한 이후 단 한 번도 면도를 빼먹지 않았다. 수직적 위계질서가 강한 일본의 공안에서 한 번 잠입업무까지 실패한 요원이 수염을 길러 눈에 띄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거기다 저 지긋지긋한 검은 목티 위의 후드. 저 하늘색 후드 집업이 지금 입은 곰돌이 잠옷보다 더 싫었다.


    "음, 저기, 히로... 궁금한 게 있는데, 너 그 후드 버린 거 아니었어?"

    "아~, 후드가 문제면 말을 하지."


    조심스레 묻는 레이에 명쾌하게 답한 스카치가 후드 집업을 벗어 침대 아래에 던졌다.

    얼마 만이더라. 그럴 이유도 필요도 없었고, 굳이 꺼림칙한 기억을 되살리기도 싫었다. 서로 피하던 부분인데 이유가 궁금해 고개를 들었다.


    "이유? 네 꿈인데, 이유가 필요해?"

    "뭐?"


    스카치는 레이가 귀여운 듯 머리를 넘겨주며 웃었다. 아까 스스로 상의를 끌어올리고 레이를 내려다볼 때 짓던 웃음과 같았다.


    "레이. 네가 원했잖아. 스카치를."


    눈을 뜨니 침대에서 상체만 떨어져 반은 바닥에, 반은 침대 위에 걸쳐져 있다. 방에는 히터가 돌아가는 소리만 났다. 레이는 헐떡거리면서 식은땀이 겨울밤 공기에 차가워지는 것도 모르고 멍하니 있었다.


    "내가... 스카치를 원했다고?"


    답을 구하고 싶었지만 꿈에서 깨어난 레이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테는 늦은 밤 갑작스러운 친우의 호출에 청사 뒤 흡연구역으로 향했다. 새벽 3시의 고요한 청사에는 드문드문 불이 켜져있었다. 당직이라 교대하러 온 부하가 자리에 앉은 후 얼마지 않아 문자가 도착했다. 경찰학교 졸업 후 얼마 가지 않아 연락이 끊긴 친우 두 명과 연락이 닿은 건 채 반년도 되지 않았다.

    한 조직에 잠입하는 업무때문에 연락을 할 수 없었다며 동기들 앞에서 미안하게 웃는 모로후시와 후루야에게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그저 살아돌아 온 것이 기특했다. 평소 많은 것들을 삼키는 후루야임을 알기에, 먼저 도움을 요청할 정도면 심각한 일이 틀림없다.

    다테는 자판기에서 따뜻한 캔 음료를 두 개 뽑았다. 발소리에 다테가 왔음을 알 텐데도 후루야는 흡연구역 근처 벤치에 앉아 테이블 위 깍지 낀 두 손에 이마를 기댄 채다. 맞은 편 벤치에 앉아 한 캔을 테이블 위로 밀자 고개를 든 후루야가 쓰게 웃었다.


    "미안. 늦은 시간에."


    늦은 시간에 한 연락과 더불어 스케줄을 꿰고 있는데 대한 사과에 다테는 머리를 긁적이며 딴청을 피웠다. 12월의 날씨에 춥지도 않은지 코트도 머플러도 없이 겨울 양복만 입은 후루야의 옷차림에 모로후시가 걱정하는 것도 알만했다. 캔을 따 한모금 마시니 음료를 손에 쥐고 생각에 잠겼던 후루야가 입을 벙긋거리다 다시 다물었다.

    얼마나 심각한 고민인 건지. 업무적인 상담은 아닐 거다. 공안의 일을 외부에 발설할 만큼 무른 사람도 아닐 뿐더러 일본을 무너뜨릴 만한 조직을 궤멸한 공까지 세운 후루야다. 그런 남자를 이렇게까지 흔드는 한 사람이야 뻔하다. 다테는 어둠과는 거리가 먼 친우를 떠올렸다.

    이번엔 또 무슨 사고를 쳤으려나, 다테는 일부러 캔의 반을 느릿하게 비웠다.


    "반장. 내가... 하..."

    "......"


    갑자기 테이블에 머리를 박는 후루야에 순간 캔을 놓칠 뻔한 다테가 황당함에 말을 잃었다.


    "진짜 미안한데 혹시 반장도 꿈에서 그- 그-!!"

    "말을 해, 미친 놈아!!"


    어둠 속에서도 얼굴이 새빨개진 게 티가 난다. 다테의 윽박에 주위를 살짝 살핀 후루야가 조그맣게 말을 이었다.


    "그-!! 와이프가 나와서 엄청 야하게... 해주냐?"

    "이 미친 새끼가..."

    "네 와이프 말고-!! 당연히 나는 히로지!"


    분노하는 다테를 다급히 진정시킨 후루야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집에 있을 안사람을 갑자기 후루야가 말할 리가 없다. 잠깐 흥분했던 다테는 후루야의 말을 곱씹고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말 같지도 않은 고민이다. 다테는 미간을 검지로 누르며 이를 갈았다.


    "너 지금, 그 따위 걸... 당연한 거 아니냐? 내가 와이프 임신하는 동안 얼마나 참았는데. 그 정도야 욕구불만이면 당연한 거라고. 뭔데. 모로후시가 본가라도 간대?"


    많은 걸 삼키는 후루야다. 그래, 하지만 이런 것까지 삼키며 참다가 나한테 토로할 건 없지 않아? 다테는 조금 억울해졌지만 어린 남동생의 사춘기 고민을 어르듯 말했다. 어쩔 수 없다. 현실에서 안 풀리니 꿈에서라도 푸는 게 인간이다. 지금도 그렇다. 어쨌든 육아라는 건 체력싸움이고, 다테는 자신이 없는 동안 고생할 아내를 몰아붙이고 싶지 않았다. 젊을 때는 참 혈기 왕성했지. 옛 생각에 잠긴 다테에게 후루야는 팔짱을 끼고 자리에서 일어나 정신 사납게 돌아다녔다.


    "그래. 그렇지. 욕구불만. 욕구불만이지."

    "차라리 말을 해. 너도 참 너다. 그렇게 오래 곁에 있었는데 모로후시를 몰라? 가서 빌어. 부탁해. 바짓가랑이 붙들어! 그럴 필요도 없이 네 그 가증스러운 표정 한 번이면 해결될 거다."


    중얼거리는 말에 다테는 하품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너무 좋은 것도 비극이다. 저렇게 업무에 모든 머리를 쓰고도 남는 공간이 넉넉하니 쓸데없이 생각으로 머리가 터지는 거다. 차라리 가서 한번 해달라고 부탁하면 후루야에게 무른 모로후시는 그게 무엇이든 들어줄 거다.

    하지만 다테가 간과한 점은, 그 모로후시에게도 선이라는 게 있고 후루야의 부탁은 그 한계를 넘는 부탁이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어쨌든 연말은 이래저래 사건이 많다. 지금부터 가서 눈을 붙인들 한두시간 후면 사건이 생길 수도 있다. 다테는 겨울바람 속에서 후루야가 구애하는 벌처럼 왔다 갔다 하든말든 잠깐이라도 자는 것을 택하기로 했다. 뭐가 됐든 그게 훨씬 효율적인 선택임은 분명했다.







    레이는 자동차 안에서 내리지 않고 히로미츠의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히로미츠는 2층의 낡은 아파트에서 치안은 별로지만 청사와 가깝고 가격이 합리적이란 이유로 머물렀다.

    지금이라도 들어가서 한 번만 하자고 해볼까? 새벽의 꿈 때문에 약간 붕 뜬 상태로 업무를 처리하는 레이에 부하직원들은 공포에 떨어야했다. CPU가 너무 뛰어나니 그런 중에 업무는 완벽하게 처리하는 것이 더 비현실적으로 비치는 걸 모르는 레이는 그저 연인의 집 앞에서 시간 낭비 중이다.

    다테와 헤어진 후 바로 출발한 것과 새벽이라 맞아떨어진 신호에 시계는 3시 30분이다. 레이는 다테의 말을 떠올리고 차에서 내렸다. 밑져야 본전이다. 뭐든 죽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레이는 흥분한 몸에서 약간의 김이 나는 것도 모르고 발소리를 죽이고 계단을 올랐다.

    페어키로 문을 여니 집은 고요한 가운데 히터와 가습기 소리만 들렸다. 조심스레 문을 닫고 들어섰다. 마음 같아선 지금 이 상태로 하고 싶었지만 레이는 날이 밝은 후 묻기로 했다. 아직 이성적이고 멋진 남자친구 역할을 팽개칠 정도로 정신을 놓은 건 아니다. 아주 조금 위험하긴 한데... 어쨌든 아직은 아니다.

    간단히 씻고 올 때마다 입는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슬금슬금 침대에 들어갔다. 벽을 보고 누운 히로미츠를 등 뒤에서 껴안자 따뜻한 체온과 특유의 체향에 피로가 풀렸다. 같이 살고 싶은데 사내 연애도 모자라서 광고하고 다닐 일 있냐며 질색하는 히로미츠에게 두 번 제안할 수는 없었다. 히로미츠와 레이는 공표한 사이는 아니지만 이미 둘의 사이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애초 냉랭한 사람이 소꿉친구라지만 한 사람 앞에서만 태도가 바뀌는데 공안 요원들이 모를 수 없다. 모른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다. 그래서 상대가 있는 것도 알고, 그 상대가 누군지도 다들 암묵적으로 인정하지만 절대 표면으로 인정하진 않은 어중간한 상태였다.

    조금 흥분상태였던 머리가 차분해지자 바로 피로가 몰려왔다. 설마 히로미츠 옆에서 잠드는 오늘 스카치가 꿈에 나오진 않겠지. 레이는 스카치를 보고 싶은 건지 아닌 건지 헷갈리며 잠에 들었다.















    카자미는 책상에 서류를 내밀고 그 앞에 선채 방긋거리며 웃는 부하를 올려다보았다. 4년 전, 잠입업무에 실패하고 최근에야 일본에 돌아온 모로후시는 눈치가 빠르고 남을 한발 앞서 배려하는 다정함에 업무적으로 속을 썩이는 일 없는 훌륭한 부하다. 웬만한 일에는 화도 안 내, 필요한 게 있으면 먼저 챙겨서 다가와 줘, 게다가 말투는 키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나긋하고 사근사근했다.

    그런 모로후시가 가끔 이렇게 웃으면서 고집 부릴 때 이유는 백발백중 한사람이다. 카자미는 오늘 아침 좀비 같은 몰골로 "꿈인 줄 알았는데... 꿈이라서 그런 건데..."란 말만 반복하며 어제와 같은 양복으로 출근한 유능한 상사를 떠올렸다. 다른 사람 마주치기 전에 샤워실에서 간단하게 씻기라도 하십시오, 하고 말하려다 벌집을 건드리기 싫어 내버려 두었다.

    카자미는 모로후시의 귀 아래 목에 붙은 살구색 파스가 의미하는 바를 애써 무시했다. 어제, 보통사람이라면 몰라도 요원이 모르기는 힘들 정도로 미묘하게 붕 뜬 후루야에 무슨 사고를 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그 실행력은 웬만하면 받아주는 모로후시에게도 과실이 있을지도 모른다.

    책상에 올려진 발령신청서를 집어 파쇄기에 넣은 카자미가 여전히 눈꼬리가 보이지 않도록 접어 웃고 있는 모로후시에게 말했다.


    "휴가 신청서로 바꾸도록."

    "네, 경부님."


    아마 그 휴가 신청서는 바로 후루야에게 올라갈 거다. 그는 두 사람이 무엇으로 이 싸움을 시작했건 점심시간 전까진 해결하길 바랐다. 그렇지 않으면 일요일 아침에 붙들려나온 것도 모자라 복도의 떠도는 좀비를 보고 공포에 질릴 부하들이 너무 불쌍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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