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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스카] 그는 이것을 --이라 부르기로 했다.
    검은조직au 2020. 12. 29. 23:20


    *조직 궤멸 후, 사망소재 주의, 후루야(아무로)의 입 주의, 아카이와 후루야의 성격이 좋지 않습니다. 후루야는 스카치가 죽은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저승의 강은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차용했으며, 아케론과 코퀴토스를 섞은 모습입니다. 그 외 설정은 개인적인 설정입니다.

    *라이와 스카치는 페어로 1년 정도 함께했으며, 버본과는 친하지 않았습니다. 주로 라이&스카치 or 라이&버본 그것도 아니면 버본&스카치의 느낌.

    *캐릭터 붕괴 및 해석 주의, 조잡함 주의












    물소리. 귀를 적시는 소리는 세차게 흐르기보다 너무 깊은 양이 천천히 흘러 어딘가로 향하는 소리에 가까웠다. 그 많은 것들이 어디로 흐르나 싶게, 자신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게.


    물비린내와 섞이는 숲의 냄새가 코로 들었다. 안개가 피부에 내렸지만 차갑진 않다. 오히려 다정함을 느꼈다. 눈에 빛이 내리는 것도 아니었는데 왜 햇빛의 냄새가 날까.



    "일어났어?"

    "......."

    "정말, 거짓말을 못 하네. 라이는."



    천천히 뜬 눈에 맺히는 형상은, 자신에게만은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리라 믿었던 사람이었다. 그래, 널 잊을 수 있을리가. 너의 그 햇볕같은 내음을 어떻게 잊을 수가. 네 그 다정한 목소리를 어떻게 잊겠어, 내가.


    차마 침음같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렇게 숨도 삼키지 못하고, 눈을 깜빡이면 그가 사라질 것처럼 아카이는 꿈쩍도 않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

    "아, 혹시 나 잊어버린 거야?"

    "......."

    "이상하네. 라이. 나 잊어버렸어?"

    "...스카치."

    "응! 이제 불러주네."



    정말로 자신을 잊기라고 했을까 눈썹을 늘어뜨리던 그는, 불러주는 이름에 안심이라도 한 마냥 눈을 가느다랗게 접으며 웃었다. 그때 살짝 치켜올라간 눈꼬리가 내려오며, 평소의 무표정과 다른 봄 같은 사람이 있었다.


    이제 아카이는 이것이 꿈속인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바다처럼 보일 만큼 광활하고 넓은 물 위에 조각배를 띄워 그를 마주 보는 기억이란, 있을 리가 없다. 애초 아카이가 기억하는 그는, 조직에서 모습이다. 그들이 페어로 일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스카치가 태양 아래서 온전한 얼굴을 드러낸 일은 없었다.


    언제나 그늘, 혹은 달 아래, 그것도 아니라면 어둑한 건물 속. 그들은 늘 어둠 속에 있었다. 단 한 번도, 단 한 순간도. 아카이가 기억하는 스카치의 얼굴은 항상 어둠 속에 잠겨있었다.


    그러니 이런 안개 낀 물 위일지언정, 서로가 선명한 낮 아래에서 본 일따위 있을 수 없다. 그 '마지막'이 오기 전까지는.



    "만져봐도 되나?"

    "......."

    "스카치."

    "......그건, 안 돼."



    왜, 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것이 아카이 자신의 꿈이라면, 만져도 크게 상관 없는 일 아닐까. 차라리 차가울 그 피부에 닿고 나면 아카이는 그를 더 쉽게 단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 지독한 미련 끝에 겨우 자신의 꿈에 찾아와 준 그를, 잊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라이."

    "......."

    "라이. 왜 나를 불렀어?"

    "......."

    "왜 나를,"

    "그러는 너는"

    "......."

    "여태 단 한번을, 온 적이 없었지."



    미련. 그 단어로 아카이의 감정을 축약하기엔, 그 하나로 아카이의 마음을 정리하기엔 무리다. 알면서도 아카이는 미련이라 칭하기로 했다. 조직에 잠입하기 전까지 일면식도 없던 사람을 이렇게까지 되새기고 붙드는 스스로를 그렇게 어리석은 이로 만들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았다.


    그 옥상에 이르기까지 아카이는 아버지의 죽음을 쫓는 것만을 목표로 두고 있었다. 아카이는 자신만만했고, 행운의 여신이 자신을 향해 있음을 잘 알았고, 자신이 축복받은 존재임을 부정할 생각도 없었다. 그랬기에 그는 조직보다도 아버지가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위장한 이유를 더 알고 싶었다. 기실 FBI의 명령이나 다른 NOC들 따위, 나아가 이 어리석은 조직마저도 아카이의 목표에는 방해물에 지나지 않았다.


    아카이는 그렇게 진실을 쫓는 자신에게 심취해 있었다.



    "라이."

    "아카이. 아카이 슈이치다."

    ".......응."

    "불러주지, 않을 건가."

    "......아직, 대답 안 했어."

    "그 대답은, 이미 너는 알고 있잖아."

    "아니. 나는 몰라. 말해주지 않으면, 몰라."



    그는 난처한 듯이 눈꼬리를 떨어뜨리며, 아카이에게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이 퍽 처량해 보였다. 스스로 만들어낸 모습일 텐데, 환상에 불과할 텐데. 아카이는 가슴이 아파옴을 느꼈다.


    그제서야 아카이는 위화감을 알아차렸다. 안개 속에서도 햇빛 아래에 있는 듯한 그의 모습. 물비린내 속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의 향기도. 더 이상한 건 아까부터 거추장스럽게 내려오는 아카이 자신의 머리카락이다. 그저 조직 속에서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 상대방이 기억하는 아카이의 모습이라면...


    아카이는 이것이 꿈이 아님을 깨달았다. 왜 자신이 스카치에게 닿을 수 없는지, 왜 그가 자신을 본명으로 불러줄 수 없는지, 왜 지금의 모습으로 자신이 이곳에 올 수 없었는지조차.



    "라이. 눈치챘겠지만 이 곳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 너는 지금 생사의 기로에 있어."

    "그렇군. 그래서... 네가 날 이름으로 불러줄 수 없는 건가."

    "죽은 자가 산 자의 이름을 입에 담으면, 그것도 기로의 선 자가 부를 정도로 마음에 둔... 존재라면, 돌아갈 수 없게 돼."

    "마음에 둔 정도로 그럴 리가 없겠지."



    그리 말하면 스카치는 또다시, 애매한 웃음을 입 끝에 달았다. 아카이는 그가 자신이 만들어낸 꿈이나 환상의 존재가 아님에 감사했다. 어쩌다 자신이 생사의 기로까지 온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그건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단지 눈앞의 존재가 그리도 그리워하던 사람임을 스스로 다시 확인했다.



    "라이. 너는 나를 불렀어. 왜? 우린 겨우 1년, 그것도 조직 내에서만 만났는데. 내 실수로 내가 자살했을 뿐인데, 왜 너는 그렇게까지 날 부른 걸까. 왜 넌, 그렇게까지 자신을 탓하는 거야? 제로에게, 그런 미움을 받으면서 스스로 몰아갈 이유는 없잖아."

    "그를, 애칭으로 부르는구나."

    "라이 너,"

    "아니 그저, 나는 네가 후루야군을 어떻게 부르는지 몰랐으니, 그래서 한 말이다. 네 말대로 우리는, 조직에서만 1년여 정도 봤을 뿐. 나는 너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지금 여기에서라도 널 아는 게 기뻐서, 그래서 그래. 이런 분별없는 남자라, 미안하다."

    "...그렇네. 먼저 가버린 내 잘못이 50은 있어."

    "그런, 하, 그렇게 말하면 더 떠나기 싫어지는걸."



    아카이는 자조했다. 아직 자신이 할 일이 있다. 돌아가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그와 있는 게 너무 기뻤다. 스카치와 있을 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인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설레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이렇게 햇살처럼 웃는 이인데, 그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야 보여주는 그 모습이 너무 애틋했다. 항상 그늘진 눈가에 맺힌 서늘함을 걷어내면 이렇게도 사랑스러운 사람인 것을 이제서야 알았다. 계산 없이 순수하게 웃는 이 모습을,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그와 어울릴 봄날의 태양 아래에서 보고 싶었다.



    "돌아가, 라이. 있어야 할 곳으로."

    "아직 네 질문에 대답하지 못 했다."

    "대답할 생각도 없잖아."

    "말해주지 않으면 너는 모르잖아. 왜 내가 널 그토록 불렀는지, 왜 모든 이유를 내게 돌리고 싶어 하는지, 왜 후루야군에게 진실을 숨겼는지. 넌 영원히 모르겠지, 스카치."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너는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네 이름조차 모르는 내가 가진 이 마음을, 이 미련을 너는 알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네가 그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면, 다시는 나를 만나러 오지 않을까 봐. 무서워, 스카치. 네가 내 유일한 두려움이야. 어렸던 내가 저지른 죄를 전부 네가 안고 떠나지 말아줘. 꿈에서조차 너는, 네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었잖아.



    "라이. 불쌍하게도. 내가 널 부숴버렸구나. 괜찮아. 당신도 제로도 살아가면 돼. 빛 속에서, 나를 잊고, 그렇게 살면 되는 거야."

    "싫어. 절대 싫다. 그런 일은 없어. 너라도 내게서 널 뺏아갈 순 없어!"

    "아니, 라이. 가. 여기서 죽을 남자가 아니잖아, 당신은."



    아카이의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는, 다정함을 칼날처럼 쓰는 것조차 바뀌지 않았다. 아카이가 제대로 이름조차 붙이지 못한 채 미련으로 억누르는 감정에 붙들려 여기까지 끌려왔다. 그를 부르는 처절한 아카이의 목소리에 잡혀 왔다. 그런데도, 그는 다시 모든 이유를 아카이에게서 빼앗아 자신에게 두려 했다. 길지도 않은 이 만남에서마저, 그는 그렇게도 아카이에게 지독하고 다정하여 잔인한 사람이 되려한다.


    아카이는 숨이 막혔다. 말을 뱉을 수가 없었다. 어떤 말을 뱉어도 자신의 앞에 있는 그가 받아주지 않을 것만 같았다. 애원도, 변명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직 아카이가 돌아갈 것만을 원한다. 그게 문득 서러웠다. 자격이 없어 심장을 움켜쥐고 울 수도 없었다. 그의 마지막에 애도하는 것도 아카이의 몫은 없었다. 그게 그들 사이의 거리였다. 스카치의 본명조차 아카이에게는 한음절도 주어지지 못했다.



    "원망해! 나를 원망해, 스카치, 제발. 부탁이다. 중요한 게 뭔지도 몰라서 널 놓았어. 네 죽음만큼은 내 탓으로 해줘. 그 정도는 내게 줘도 되잖아. 네 삶을 스스로 버렸잖아. 그러니 죽음의 이유는 내게 줘도 되잖아. 왜 내게 그렇게 잔인한 거냐. 왜 내게만..."



    아카이는 가슴을 찢는 고통에 울부짖었다. 이제껏 한번 꿈길에서조차 그림자도 보여주지 않은 그에게 애원했다. 삶의 이유를 빚졌다. 그렇다면 죽음의 이유만큼은, 온전히 아카이 자신이 받기를 원했다.


    어느새 배가 기울어졌다. 산자의 떠날 시간이다. 아카이는 배의 바닥을 기어 매달렸다. 아직 떠나고 싶지 않았다. 아직 하지 못한 말이 남았다. 아직 그에게서 죽음의 이유를 넘겨받지 못했다. 이 시간이 끝나면, 다시 못 볼 수도 있는데. 그가 붙들려온 이유를 들려주지도 못했는데. 아카이의 눈물이 떨어질수록 배는 더욱 강 속으로 가라앉았다.



    "스카치! 스카치! 나를 보내지마! 제발!"

    "안녕, 라이... 안녕. 당신을 --했어."

    "---!!!"









    "---!!!"


    아카이의 눈이 떠졌다. 눈물이 옆얼굴을 타고 흘렀다. 마침 방에 있던 요원이 너스콜을 불렀다. 그렇게 간호사들의 분주한 발소리와 의사의 목소리가 몇 번 지나갔다. 아카이는 다시 진통제와 수면제를 맞았다. 그렇게 눈을 다시 감고 뜨기를 며칠이나 지났을까. 다시 눈을 뜬 아카이는 입에 물려있지 않은 산소호흡기에 목을 몇 번 가볍게 기침했다. 눈을 굴려 오른쪽 탁상에 있는 물컵을 잡으려는데, 불쑥 손이 뻗어 나왔다.



    "네 놈은 목숨이 여러 개라도 되는 모양이군. 이번에야말로 죽을 수 있었는데 아쉽겠어."



    싸늘한 말과는 달리 침대의 각도를 조정한 후루야는, 아카이의 입가에 컵을 가져다주었다. 그 물을 달가이 마신 아카이는, 후루야가 팔짱을 끼고 옆에 다시 설 때까지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뭡니까? 기분 나쁘게 쳐다보고."

    "......음, 흠. 자네가 내 병실에 있는 것이 이상하지."

    "그러게요. 잠깐 상태만 보러 온 건데 하필 지금 깨어난 당신이 문제인 거겠죠."

    "내가, 얼마나 잠들어있었나?"

    "글쎄요. 제가 더는 버본으로 있지 않아도 될 정도로는 주무셨던 것 같군요. 상태가 너무 나빠 미국으로 보내지도 못할 정도였네요. 죽어서 만나야 될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당신처럼 지킬 게 많은 사람이. 덕분에 이 경찰병원이 초상집이었어요."



    덕분에 아카이는 그가 아직 일본의 경찰병원에 머물러 있음을 깨달았다. 하기야, 보안 문제도 있고 후루야가 거리낌 없이 드나들 수 있는 병원이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조직이 궤멸했다고 해도, 공안 경찰이라는 신분상 바깥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삼가야했다. 아카이는 후루야의 빈정거림에, 혹시나 하는 질문을 던졌다.



    "내가, ...혹시, 무슨 말을 한 건,"

    "닥쳐요. 나는 용서 못합니다. 아무 잘못도 없으면서, 내 친구가 죽은 이유를 가져가려하는 건 너무 주제넘어서 입에 담고 싶지도 않습니다. 나와 히로 사이에 끼어들지 마세요. 알겠습니까."

    "히로?...히로인가, 그랬군."

    "너 이 새끼! 내가 닥치라고 했지! 그가 죽은 건 내 잘못이야! 내 잘못 뿐이라고! 알겠어? 두 번 다시 그 이름을 입에 담지 마! 죽여버릴 거니까!!"


    "그를 봤다."



    아카이의 멱살을 잡고 분노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후루야가 멈춘 것은 그 순간이었다. 아카이는 후루야가 멱살을 잡은 손을 떼어냈다. 후루야는 그때까지 환자 상대로 길길이 날뛰던 것이 거짓말인듯,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카이를 바라봤다.



    "하,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고작, 당신이, 꿈에서나 봤다는, 그 따위 말을."

    "나는 그를 놔줄 생각이 없어, 후루야군."

    "너,"

    "믿든 말든, 나는 그를 만났어."

    "닥쳐..."


    "너를 제로라고 불렀다."



    그 말에, 후루야는 아카이에 향하던 살기를 풀었다. 이 남자가 하는 말은 믿지 않는다. 되도 않는 거짓말로 히로미츠가 죽은 이유를 뒤집어쓰려했던 자다. 아무 것도 모르는 주제에, 자신과 히로미츠 사이에 비집고 들어와서, 후루야가 모르는 스카치를 품은 자다. 죽여버리고 싶었다. 다정한 히로미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런 주제에 그가 죽은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아는 것처럼, 그래서 히로미츠의 유지를 받드는 것 같은 이 남자를 증오했다. 아니, 될 수 있다면 이 남자가 가진 히로미츠의 마지막 기억을 빼앗고 싶었다. 두 번 다시 떠올릴 수도 없게. 감히 기억하게 두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침묵했다. 히로미츠와 관련된 어떤 것도 이 남자에게 흘리고 싶지 않았다. 남자의 비상한 기억력이 어떻든 간에, 그렇게 이 남자가 자신의 친구를 잊어가기를 바랐다.


    그것이, 서로에게 유일하다고 믿었던 존재를 독점하고 싶었던 후루야가 선택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모든 인간은 망각한다. 모든 기억은 바랜다. 모든 빛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후루야는 자신했다. 세상 모두가 히로미츠를 잊고 살아가게 된다 해도, 자신만 그를 기억하면 될 일이다. 이 남자도 마찬가지다. 고작해야 1년이었다. 이 남자가 어떤 히로미츠를 기억하든지, 지킬 것이 너무도 많은 이 남자가 히로미츠를 위한 자리를 품고 살아갈 리가 없다. 그리 확신했다.


    그랬는데. 단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데. 히로가 나를 제로라고 부른다는 걸, 난 한 번도 흘린 적이 없는데. 히로, 왜?


    나한테 와 준 적 없잖아. 단 한 번도 없었잖아. 네 시신조차 수습할 수 없었던 나한테 단 한 번도 넌... 네 죽음을 이용한 기회조차 날려 먹었던 이 남자를 왜 네가 위로한 건지 나는 이해조차 못 하겠어.


    후루야는 인정해야 했다. 자신의 소꿉친구에게 자신이 모르는 부분도 있었음을. 스카치는 버본을 모른다. 버본도 스카치는 모른다. 하지만 라이는 스카치를 안다. 그게 고통스러웠다. 인정하기 싫었다. 어째서 죽음의 경계에서 히로미츠가 그를 만나러 간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들 사이에 어떤 유대가 있었음을 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여전히... 다정해서 잔인한 남자였다. 그를 만나기 전 나는, 아니 만난 후에도, 내게는 모든 게 체스판 위의 말이었다. 남들은 보지 못하는 운명의 수레바퀴가, 내게만은 훤히 보였다. 그래서 자만했지. 할 수 없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어. 그가 죽기 전까지는 말이다."

    "......"

    "나는 변수를 만드는 걸 좋아하지 않아. 그런 건 방해가 될 뿐이니까. 인간은, 인간의 감정은 더더욱 그렇다. 목표를 달성하는데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된다. 나는 그를 품으면서도, 통제할 수 있다 여겼어. 그를 품은 것 자체가, 나조차 이미 내 목표를 이루는데 변수를 만든 건데도, 말이지. 흔들리기 쉬운 사람이라 해서, 지키기도 쉬울 거란 보장은 없는데도."



    후루야는 왜 이 남자가 자신의 소꿉친구를 마음에 담을 수 밖에 없는지 깨달았다. 동류였다. 자신과 그는 너무나도 닮았다. 그래서 후루야는 완벽하게 아카이를 이긴 적이 없었다. 히로미츠도 알았겠지. 그래서 받아준 것일 테다. 자신과 닮은 고독한 이 남자가, 조금이라도 쉴 수 있는 곳이 생기길 바라면서. 친구로서 넘을 수 없는 선까지 넘어서.



    "나한테 고해성사라도 하는 겁니까?"

    "아니. 그가 죽은 이유라도 달라는 내 이기심을 인정해주길 바라는 것 뿐이야. 어차피 우린 서로 이해하기엔 독점욕이 너무 강하지 않나."



    역시, 후루야는 아카이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끝까지 망각하지 않겠다고 선포라도 하는 건가. 후루야가 왜 자신에게 히로미츠에 대한 어떤 정보도 주지 않으려했는지 다 안다는 그의 축약된 말에, 어쩔 수도 없이 죽여버리고 싶었다. 이 감정만큼은, 히로미츠도 이해해주겠지.



    "나는 히로미츠를 당신과 공유할 생각은 없어요. 나한테 당신을 인정할 자격도 없습니다. 당신은 당신대로, 나는 나대로 그를 애도하면 되겠죠. 그 녀석은, 그런 방식조차 받아주는 놈이니까."


    "...그래."

    "회복하면 당장 내 나라에서 꺼져요. 빌어먹을 FBI놈들."



    환자가 있는 병실을 나서는 모습이라기엔 지나치게 큰 소리가 났지만, 문은 다행히 부서지진 않았다. 후루야가 나서고서야 들어온 부하직원은, 조디를 비롯한 다른 요원들에게 아카이의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다들 병실을 들어올 때마다 문이 덜컹거렸다. 덕분인지 병원에는 절대안정을 위해 설계된 문조차 부수는 타국의 요원들에 대한 뒷담화가 한동안 나돌게 되었다.


    그리고 아카이는 이제서야 허락된 그의 이름을 되새기면서, 조용히 곱씹어보곤 했다. 어린 날 자신의 실수와, 허락받지 못해 빼앗은 그의 죽음의 이유와, 그가 자신에게 남겨준 마지막 정의를.


    그는 이것을 --이라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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