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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번스카] A Revival of the Time
    단편 2023. 5. 27. 22:27

    전력주제 : 대체품
    주의 : 무엇이든 이해 가능한 너그러우신 분들만 읽으실 것을 권합니다..😅😅














    배신자의 말로는 비참했다. 사람으로서의 마지막 인권마저도 사냥당하듯이 내쫓긴 존재의 끝에 환대란 없다. 그럼에도 그 죽음을 안다면 누구라도 잠깐은 침묵할 정도였다.

    시가지의 번듯한 호텔에 있는 칵테일 바에 무수한 존재의 피를 그 손에 묻힌 자가 태평하게 스카치를 마시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도쿄의 야경을 등지고 혼자 술을 마시는 남자의 모습은 빈말로도 보기 좋다고 하긴 어려웠다. 그러나 그조차 앳된 얼굴이 우수에 젖어 잔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버번은 잔에 어룽거리며 비치는 자신의 금발을 들여보다 술을 들이켰다. 몇 번 그의 옆자리에 사람이 오갔지만 싸늘하게 올려다보는 남자의 새파란 눈동자에 모두들 말을 삼키며 자리를 떠났다.

    조직원들은 ‘그’ 스카치가 노크(NOC)였음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조직에 쥐새끼가 감히 숨어들었다는 것이고, 그 쥐새끼를 잡아낸 자가 ‘라이’라는 것이었다. 라이가 진에게 제출한 증거들이 너무 명확했기에, 진 또한 별말 없이 라이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스카치는 어릴 때부터 조직에 거둬져 입었던 은혜도 모르는 검은 머리 짐승이 되었다. 조직에서 1년 만에 코드네임을 얻은 것으로 알음알음 알려졌던 라이는, 스카치란 노크를 잡음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모두에게 각인시켰다.

    그러나 스카치가 자살했던 장소에 도착했던 버번은 그 현장이 교묘하게 짜인 거짓이라 굳게 믿었다. 버번 또한 라이가 제출한 자료들을 모두 확인했다. 하얀 종이 위의 담담하게 서술된 글자들, 녹음자료, 경찰들에게 넘기려 했던 조직의 근거지나 조직원들의 정보들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왜’가 빠져있었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한 건지 명백한 자료들은, 단 하나, 이유만을 제시하지 못했다.

    라이는 노크다. 스카치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자살을 종용하고, 그러고도 뻔뻔하게 진에게 조직원인 척 신뢰를 사는 모로보시 다이가 노크다. 스카치가 살아있을 때는 그저 거슬리기만 했던 남자였는데, 스카치가 그에 의해 자살한 후 명확히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스카치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자신도 몰랐겠지만, 모로보시에겐 여동생이 있었다. 조직에는 무연고자라 말한 것과 다르다.

    그 시점을 기준으로 파헤치기 시작하자 수상한 것들이 있었다. 모로보시는 여자에 미쳐 조직에 뛰어든 것으로 되어있었지만, 그런 것 치고도 조직의 출세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았다. 미야노 아케미에 대해 건조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사랑에 눈이 뒤집혀 들어온 남자가 하는 행동 들이라기엔 설득력이 모자랐다.

    그럼에도 문제는, 조직은 그런 인간적인 면은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직은 라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정확히 죽이고 처리했는지, 어떤 비열한 방식으로 다른 조직과 거래에 성공했는지, 어떤 잔인한 방법으로 클라이언트가 요구한 타깃을 고문했는지 정도가 관심사다.

    버번이 할 수 있는 것들이라곤, 스카치와 친하게 지낸 코드네임이었다는 이유 하나로 자신이 노크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수행해 내는 것이었다. 버번은 자신의 뒤로 수많은 조직원들의 조롱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런 어중간한 쓰레기들이 하는 말에 흔들릴 정도로 버번의 입지는 약하지 않다.

    알아내야 할 것들이 더 많았다. 어린 시절, 기억을 하는 시점부터 버번은 스카치와 함께였다. 펜을 쥐어야 하는 나이에 칼과 총을 들었다. 식기를 쥐는 법과 사람의 급소를 내리찍는 방법을 같이 배웠다. 예절과 동시에 수많은 독극물에 내성이 생기는 훈련을 버텼다. 중간에 주로 다루는 임무가 나뉘어 이전만큼 만나기는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스카치는 언제고 버번이 자신을 부를 때 와주었다.

    그런 사람이었다. 사람을 죽이면서도 버번에 대해서는 어디까지고 물렀다. 그런 점이 좋았다. 조직이 시키는 일에 대해 반발할 생각도 못하는 성실한 남자의 단 하나의 예외가 자신인 것이 좋았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약 서로가 배신자가 된다면 목숨만큼은 서로가 거둬주기로 했었다. 어차피 쓸모가 다해지면 버림받을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최소한 서로가 서로의 마지막을 지켜봐 주길 원했다.

    사소하진 않아도 불가능한 바람은 아닐 거라 믿었다. 그조차도 옥상에서의 총성이 모두 앗아갔지만.





    2년 전, 라이가  FBI 출신의 노크임을 스스로 밝히고 도망쳤다. 서류들은 다시 분석됐고, 아카이 슈이치가 어떻게 조직에 들어올 수 있었는지, 왜 그런 행동들을 했는지, 코드네임을 받은 후 왜 스카치에게 누명을 뒤집어 씌운 건지. 그 후 스카치의 죽음은 재평가받았다.  ‘그런’ 노크에게조차 이용당한 멍청한 조직원으로서.

    명예는 없었다.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명예가 재평가된들 높은 위치가 될 수도 없는 일이다. 스카치의 죽음은 다시 한번 난도질됐고, 또다시 조직원들의 혀 아래에서 모욕당했다. 버번은 그 모든 과정들을 말없이 지켜볼 뿐이었다. 베르무트가 진에게 라이와 함께한 시간들을 조롱하고, 보스가 아카이에게 ‘실버불렛’이라는 명으로 칭하는 것을 자신과 무관한 일처럼 흘려 들었다.

    그때 버번에게 중요한 것은 이미 균열이 일어난 조직의 부흥이 아니었다. 서로가 약속했던 죽음에 끼어든 불청객인 아카이에게 합당한 벌을 내려야만 했다. 감히 자신과 스카치 사이에 끼어든 이물질에게 어울리는 복수를 하지 않으면 죽어서도 스카치를 볼 낯이 없었다.

    라이하 고개에서 버번은 홀로 아카이를 기다렸다. 예상대로 조디와 캐멀을 죽일 수 없었던 건지, 쿠스다 리쿠미치의 시신을 이용해 죽음을 가장했던 남자는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승자는 정해진 후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조직은 고교생 어린 탐정의 손으로 무너질 일만 남았다. 인간의 탐욕으로 시작한 악의 비참한 종말이다. 세기를 건너 인간의 시체를 뜯어먹으며 기생하며 살 것 같던 조직의 수장은 태어나 성인조차 되지 못한 고교생 탐정에 의해 바닥을 드러내고 자멸할 것이다.

    그 자리에서 사실 스카치는 이미 조직에게 버림받은 패였고, 스카치에게 증인 보호 프로그램을 제안해서 빼돌리려다 일이 틀어져 자살했음을 들었다. 협력을 제안하는 아카이를 보는 버번은 고작 이따위 말을 듣기 위해 여기까지 온 자신이 우스워졌다.

    스카치가 FBI의 제안을 승낙한 이유야 뻔하다. 스카치는 자신이 안 되면 버번이라도 조직에서 벗어난 삶을 살길 바랐으니까. 그런 사람에게 라이가 한 제안이 얼마나 달콤해 보였을지 듣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아, 정말 어리석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그 애’에게도 이렇게 말했겠지. 역겨운 인간.”



    망설임 없이 아카이의 머리를 향해 총을 겨눴다. 아카이 슈이치가 하는 다디단 말에 도대체 몇 명이 희생당했던가. 어린 날 자신을 돌보아주었던 미야노 부부의 딸도, 스카치도, 모두 이 남자의 허무맹랑한 말에 속아 죽었다. 죽어버렸다.

    믿지 않는다. 자신의 머리를 향해 겨눠진 레이저를 알았다. 어차피 혼자 나올 거라는 순진한 기대 따윈 하지 않았다. 그 총알이 도달하기 전에 방아쇠를 당기려는 시도는 성공했는지 하지 못했는지 알 수 없다. 감기는 눈 사이로 다급한 손이 뻗어졌던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다시 스카치를 만날 수 있다. 그 외에는 바라는 것이 없었다.






    * * *







    죽고 난 후의 세계란 이렇게 생겼나.

    사후세계를 믿은 적은 없었지만 눈을 뜨자 보이는 하얀 천장은 조직이 후원하는 병원의 것과 비슷했다. 코에 감겨드는 알코올 냄새까지도 유사하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옆자리의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순간 눈앞에 보이는 얼굴은 꿈에서도 잊은 적 없다. 걱정스러운 눈동자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스카치의 얼굴에 멍한 정신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서러움인지 뭔지 모를 것이 밀려와 눈가가 뜨거웠다. 물기가 어른거려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눈을 한번 깜빡이면 다시 보이는 얼굴은 그대로다. 선명해진 얼굴이 자신의 눈에 비쳐 보이는 게 믿기지 않았다.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



    제대로 언어로 형상화조차 되지 못한 말을 외치며 남자를 끌어안았다. 품에 닿는 온기에 의아함을 느끼지도 못했다. 다시 만난 게 너무 기뻐서, 믿기지가 않아서, 남자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는 버번이 안쓰러웠는지 남자는 조금 굳었다가 이내 버번의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등을 토닥였다.



    그렇게 서러운 울음을 토해내니 오히려 이상했다. 분명 자신은 라이하고개에서 머리가 꿰뚫려 죽었는데 사실 머리가 아니었나? 남자의 품에서 고개를 들어 어깨너머로 보는 풍경은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자신에게도 익숙한 병원의 모습이다. 울음을 그치고 몸을 떼내자 이전과 달리 다정한 말로 자신을 더 다독이지 않고 스카치는 순순히 물러났다.

    멋쩍게 웃으며 침대 옆 간이 의자에 앉은 스카치는 평소 불편하다며 생각조차 않던 양복을 걸치고 있었다. 전과 같다고 생각했던 얼굴에는 어울리지 않는 수염마저 기르고 있었다. 아니, 심지어 향수도 달랐다. 남자의 몸에서는 옅은 시트러스 계열의 향이 났다. 스카치가 평소에 뿌리던 스모키 한 향과 달랐다. 창밖은 느리게 해가 뉘엿하게 지고 있다. 행색만 보면 영락없이 퇴근길에 버번의 얼굴만 잠깐 보러 온 듯한 모양새다.

    아까 전까지 제대로 발음도 못 하며 남자의 품에 안기며 울었던 게 거짓말처럼 버번은 남자에게서 멀어졌다. 남자가 곤란한 표정으로 병원 침대 옆 협탁에 있는 곽에서 휴지를 뽑아 건넸다. 스카치였다면 스스럼없이 자신의 손가락을 뻗어 버번의 눈물을 걷어냈을 것이다. 내민 휴지를 받지도 않고 쳐다보는 새파란 눈동자에 맑은 청회색 눈동자가 옅게 흔들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경찰청 수사 1과 소속 모로후시 히로미츠라고 합니다.”



    차분한 목소리와 함께 가슴 안쪽 주머니에서 명함케이스를 꺼낸 남자는 버번에게 일상적인 행동처럼 명함을 건넸다. 낚아채듯 명함을 가져간 손에 들린 조그만 하얀 종이에는 믿을 수 없는 글씨들만이 적혀있었다.

    경찰이라니? 수사 1과? 이게 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여전히 자신을 보는 스카치, 아니 모로후시 히로미츠라며 자신을 지칭한 남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렇다면 정말로 아카이가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스카치가 아니라 경찰이었던 모로후시였던 걸까. 그럴 리가. 어처구니없는 상상력에 비해 대답은 더욱 쉽게 단칼에 떨어졌다. 어린 때부터 함께했던 스카치의 시신을 처리한 것은 버번 자신이었다. 자신보다 키가 컸던 남자의 최후가 겨우 한 줌의 재가 되어 흩날렸던 순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눈앞의 이 역겨운 남자는 무엇일까. 일순 불쾌감이 치밀었다.



    “… 아무로 토오루입니다. 이름 외엔 딱히 기억나는 게 없어서, 모로후시 씨에게 폐를 끼쳤네요. 죄송해요.”



    히로미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의사를 불러오겠다며 자리를 나섰다. 그제야 협탁 위에 그 자리에 처음부터 있었던 휴대폰이 있었다. 다행히 이전에 자신이 쓰던 것과 같은 기종이다. 히로미츠가 꺼낸 것은 아니니 아마도 버번이 쓰던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패턴으로 바로 열리는 화면은 연도가 3년 전이다. 다급히 메일로 접속했지만 조직에 관련된 내용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버번은 내용을 뇌에 정리하지 조직에 관련된 내용을 남겨둘 정도로 허술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손에 차갑게 식은땀이 고여 점점 휴대폰이 무겁게 느껴졌다. 아무리 버번이 조직에 관한 내용을 남기지 않는다 해도 메모에 자신만 알아볼 수 있는 정도의 암호는 남겨두는 편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버번만 없다면 그래도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크리스 빈야드도 없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사건에 대해 되짚던 중 4년 전 폭발사건을 기억해 냈다. 건물 한 층이 날아갔던 폭발사건. 그러나 검색의 끝에는 아무런 페이지도 검색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 시점이면 관람차 폭발사건이 있어야 했는데, 그도 검색되지 않는다.

    가벼운 검사 후 병원을 나서는 버번에게 히로미츠는 연고지도 없으신 분이 괜찮겠냐며 거듭 걱정을 반복했다. 스카치가 선호하지 않던 승용차를 운전하는 히로미츠의 곁에서 3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도쿄의 풍경을 흘려보았다.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만약 조직이 없어서 스카치였어야 했을 히로미츠가 스카치가 될 기회를 잃었다면, 다시 스카치가 될 수 있는 세계를 만들면 된다.  두 번 실수는 하지 않는다. 이번만은 서로의 손에 죽을 수 있는 미래를 만들 것이다.



    “… 형사님이시면, 총을 잘 다루시겠네요.”
    “남들 하는 만큼은 하는 것 같아요.”



    남들 하는 정도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리 어렵진 않을 것이다. 이미 한번 올라갔던 자리인데, 배경이 바뀐 들 그 재능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버번은 스카치가 저격수가 될 미래를 그렸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설정할 수 있는 세계란 번거롭지만 동시에 매력적이기도 했다. 이 두 번째 세계에서만은, 당신만을 위한 무대를 설계하는 데 성공해 보일 것이다.



    “기대되네요.”



    주연을 잃은 무대는 한 번으로 족하다. 닫히는 문 사이로 혼란스러운 히로미츠의 표정을 뒤로했다. 이번만은, 어떤 방해물도 없는 무대를 완성하리라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스카치의 죽음 이후 불면에 시달리던 버번에게 오랜만에 주어진 고요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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