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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번히로] A Perfect Nightmare
    단편 2024. 8. 30. 23:47

    * 주의 : 아동에 대한 학대, 가스라이팅 등 트리거 주의
    고증이 안 되어있습니다... 세포나 경찰서 이야기는 흐린 눈 해주시면 감사합니다🥹🥹🥹

    전편 : A Revival of the Time
    https://rsbwith.tistory.com/m/79










    여름의 저녁은 느리게 온다. 숨을 들이쉬는 것조차 무겁게 느껴지던 공기의 질감이 가벼워지기 시작하고서야, 가을이 오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보다도 더 달가운 것은, 야외에서 바깥에 오래 있어야만 하는 순간이 조금은 버틸만해지는 점이다. 스카치는 숨소리를 죽이고 스코프 너머로 보이는 지점을 조준한다.



    이 순간, 그는 자신의 손에 사신의 낫이 쥐어져 있음을 안다. 신이 그에게 하사한 적 없고, 자신 또한 그러길 바란 적 없는 생과 사를 가르는 낫. 무감한 목소리로 카운트 다운을 외는 조직원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어린양의 머리를 맞춘다. 그것이 그가 베풀 수 있는 유일한 배려였다.



    이번 타깃은 정적 제거를 요청한 정치 집단의 의뢰에 의해 선정되었다. 고작해야 이념 하나 다른 것으로 사람의 목숨을 없애고 싶을 만큼 증오한다는 게 어떤 마음인지 스카치는 알 수 없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이 희생양이 혹여라도 살아남아 후일을 도모할 수 없게 만드는 것, 그뿐이다.



    최초의 기억부터 스카치는 조직의 비호 아래 자라났다. 그 조직이 그에게 가르치는 것들이란 대개 독에 적응하는 법이나 생명체를 무감하게 대하는 법 등이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빈 종이에 써진 진리에 반기를 들 만큼 스카치는 어리석은 아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버번이 존재했다. 자신만큼 어리지만, 밝게 빛나는 금발에 어울릴 만큼 환하게 웃을 줄 아는 아이였다. 너무나 당연하게, 스카치는 버번의 동의조차 없이 그를 소중히 여겼다. 그 마음이 가족인지 친우인지, 혹은 연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독의 내성에 적응하는 훈련에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버번의 창백한 얼굴을 기억한다. 스카치는 어린 자신에게 유일하게 주어진 가족이자 친우가 사라질까 너무 두려웠다. 그래서 다음 수업 때 자신이 그 독을 다 먹어버렸다. 단계를 넘은 주입에 어린 몸은 견디지 못했다. 조금만 해독제를 먹이는 게 늦었다면 그대로 죽었을 거라며 조직의 주치의는 재밌는 구경을 놓친 것처럼 킬킬 거리며 웃었다.



    소중한 걸 만들지 마라. 그건 너를 약하게 만들 테니까. 아이리쉬는 병실 침대에 누워 고개조차 움직이지 못하는 어린 스카치를 내려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스카치는 그 말을 들으며 눈을 깜빡이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생각했다. 약해져도 상관없어. 그 애를 지킬 수 있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아.



    아이리쉬는 스카치의 회색 눈동자를 들여다보다 혀를 차고는 병실을 나섰다. 그는 이후에 그런 말을 한 적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훗날 그가 피스코를 아버지처럼 따른다는 말을 건너 들었을 때, 어쩌면 자신과 같은 처지의 어린애가 불쌍했나 추측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조차도 이젠 아무런 의미 없는 이야기였다.



    내가 왜 그대에게 스카치란 이름을 권했는지 알고 있습니까. 스카치는 럼의 앞에 서서 고개를 내저었다. 어린아이의 건방진 태도에도 럼은 크게 거슬려하지 않았다. 이브에게 선악과를 권하는 뱀처럼 럼은 조용히 속삭였다. 선대 스카치의 이름에 부디 폐를 끼치지 말길 바라죠. 그대는 현명한 아이니 까요.



    현명하다? 조직에서 정의하는 '현명'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스카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단지 스카치는 죽여야 할 대상을 헷갈리지 않을 뿐이다. 그건 조직이 아닌 세상에서 말하는 현명과 가까울지 궁금했다.



    클리어. 짧은 단어 하나로 스카치는 타깃의 죽음을 보고한다. 실패란 코드네임을 가진 스나이퍼에겐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짐을 정리하고 건물 아래로 내려오면 운전석에 앉아있던 버번이 고개를 까딱였다. 결 좋은 밀빛 금발이 흘러내리며 석양을 반사한다. 그 때문에 순간적으로 눈이 부셨다.



    이럴 때면 다시 생각하게 되고 만다. 만약 우리가, 어릴 때 만난 곳이 이 조직이 아니었다면... 적어도, 내가 아니라 너만이라도 그랬으면 어땠을까. 농담삼아 한 말에 버번은 정색하며 그 이후로 스카치에게 묘하게 냉랭하게 굴었다. 그러면서도 임무를 마친 자신을 데리러 온 남자의 마음 씀씀이에 자꾸만 버번에게 어울리는 곳은, 그가 가진 머리칼과 같은 태양 아래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무슨 생각해요? 버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적막을 찢는다. 그는 조수석에 앉아 벨트를 매는 스카치를 본다. 버번은 자신과 함께 있을 때 집중하지 못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스카치가 생각하는 것은 버번이 알아선 안 될 종류의 일이었다. 스카치는 고개를 살포시 가로저었다. 그 행동에 버번이 미간을 찌푸린다. 그게 귀여웠다. 스카치는 옅게 웃으며 검지를 뻗어 남자의 모아진 미간을 문질렀다.







    "그냥, 네 금발이 석양 아래 빛나는 게 예뻐서."

    "... 나보고 예쁘다고 하는 사람은 당신 하나 정도인데요."

    "다들 눈에 문제가 있나 보지."

    "예쁘다고 말해도 살려두는 게 당신 하나라는 생각은 안 해요?"







    허벅지 위로 올라온 손이 은근하게 안쪽을 타고 올랐다. 하필 차 안이라 도망갈 장소도 없는데. 이전에야 살인 후에 관계를 맺으며 풀기도 했지만 요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불안해하는 버번의 눈동자를 보니 자신의 문제는 미뤄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느새 뒤로 넘어가는 조수석 앞으로 버번이 자신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는다.



    이제 해가 지고 있는 바깥의 하늘은 짙푸른 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실체와 그림자가 뒤섞이는 시간.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시간.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알 수 없는 시간.¹ 그 시간 속에 오롯이 자신을 붙들어오는 남자의 체온만이 유일한 생의 증명이었다.











    * * *













    헛숨을 들이키며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익숙한 벽지의 천장이다.



    아직 동트기 전 새벽, 바깥은 짙푸른 어둠에 잠겨있다. 히로미츠는 구역감을 느끼며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식은땀이 온몸을 적셔 몸이 한기를 느꼈으나 달아오른 열에 다시 이불을 덮을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요 며칠간 계속해서 같은 패턴이었다. 아무리 피하려 해도 눈을 감으면 반복해서 꾸는 꿈은, 너무 잔인하고 끔찍해서 누구에게 털어놓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꿈은 무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모로후시 히로미츠는 현재 무고한 시민을 죽이고 싶어 하는 욕망을 꿈으로 해소하고 있는 것인가? 단순한 문장의 나열만으로 발끝부터 올라오는 소름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명치께부터 싸하게 퍼지는 감각이 선득했다.



    지키기 위해서, 정의의 편이 되기 위해서 경찰이 되었다. 그 하나만은 히로미츠의 마음속에 굳게 새겨진 신념 같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반복되는 꿈에, 이제는 수사 1과의 형사인 자신마저 때로 거짓처럼 느껴졌다. 히로미츠는 마른세수를 하며 고개를 저었다.



    무수한 꿈의 끝에 자신을 바라보며 웃는 금발의 남자. 꿈에서 깨고 나면 그 얼굴만은 흐릿하게 지워져 아무리 애써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남자를 향해 마주 웃으면 디디고 선 발바닥 아래 땅이 저 깊은 심연 아래로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온몸에서 방금 죽인 사람의 피냄새가 나는 것만 같아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실제로는 아주 먼 곳에 있는 사람 한 명 죽였을 뿐인데.



    꿈속의 자신이 기계처럼 사람을 죽이고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과 달리, 현실의 히로미츠는 꿈에서 깬 후 죄책감에 시달렸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어느 것이 진실인지 구별해 내기 점점 어려워졌다. 뭐가 됐든 상관없었다. 이제 더는 이 꿈을 꾸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이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 꿈에 대해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지친 얼굴로 거실에 나가면 아무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히로미츠를 바라본다. 아무로는 아직 기억을 되찾지 못했기 때문에, 히로미츠의 집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갈 곳 없는 사람을 내쫓을 정도로 히로미츠가 냉정한 사람도 아니지만, 시설과 연계할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은 것은 히로미츠의 사심이 없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아무로는 공짜로 머물 수는 없다며 이것저것 살림을 떠맡았다. 히로미츠의 출퇴근 시간이 들쑥날쑥한 가운데서도 퇴근한 그에게 늘 환하게 웃으며 응원의 말을 건넸다.  기억이 돌아오지 않아 곤란한 건 아무로 자신일 텐데도, 히로미츠를 향해 보여주는 진심 어린 태도에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눈치가 없는 건 아니라서 아무로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금세 알아차렸다. 곤란했던 건, 그게 싫지 않았다. 그래서 히로미츠가 먼저 고백했다. 이제 아무로가 없었던 시간들은 기억조차 희미했다. 그리고 행복한 시간도 잠시, 히로미츠는 꿈속에서 '스카치'란 남자가 되어 살인을 반복하게 되었다.



    밤마다 꾸는 악몽에 연인이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을 곁에 재울 수는 없었다. 매일 제대로 잠들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깨어나는 자신의 곁에 그를 둘 만큼, 히로미츠는 염치없는 남자는 아니었다.



    내가... 사람을 죽이고 싶은 걸까요?



    안 그래도 요즘 잠을 못 이룬다고 걱정하는 연인에게, 그런 고민을 털어놨다간 어떻게 될지 너무나 뻔한 일이다. 기억을 잃는다는 게 어떤 건지, 어린 시절 부모님의 살인 사건으로 겪어봐서 히로미츠는 더더욱 아무로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짐까지 부담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 히로미츠는 아무로에게 별 일 아니라고 웃어 보였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 * *









    출근 후 서는 비상이 걸렸다. 본래도 마츠다가 이 거리는 정신 나간 게 틀림없다고 말할 정도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긴 했다. 단, 이번 제보는 유명 정치인 대상 테러에 관한 것이었다. 장난일 수도 있다. 오히려 장난이길 모두가 간절히 바랄 것이다. 그러나 진위 여부 확인은 해당 정치인을 무사히 경호한 이후에 확인해도 된다. 급히 방탄조끼를 입으며 권총을 챙긴 히로미츠는 문득 손에 닿는 차가운 금속의 감각에 가볍게 소름이 돋았다.



    파트너도 그렇지만, 경찰에게 총이란 자신의 수족과 같다. 되도록 쓸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현장이 경찰의 편의를 봐주며 진행되는 일은 거의 없다. 최후의 수단인 만큼, 자신의 신체 일부처럼 느껴질 정도로 길들여온 총이 오늘만큼은 마치, 살인하기 위한 도구처럼 느껴져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답하며 히로미츠는 상념을 깨트렸다.



    우선 확인해야 할 것들은 먼 시야각에서 혹시 정치인을 노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변 높은 건물들을 모두 확인해야 했다. 동시에 부근에서 수상한 사람이 없는지 저택 인근 경호도 진행해야 했다. 히로미츠는 파트너와 함께 건물의 옥상과 비상구를 하나하나 확인해 나갔다. 그러던 중 한 건물의 옥상 문을 파트너가 열려할 때, 어쩐지 그래선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문이 열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히로미츠는 자신의 과민함을 억눌렀다. 히로미츠와 파트너는 혹시 수상한 게 숨겨져 있진 않은지 각자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며 구석구석 확인했다. 탐색을 마친 히로미츠가 뒤를 돌아본 순간, 파트너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뭐지? 이마 한가운데 쏘여진 총알에 즉사한 시체는 여전히 눈을 뜬 상태였다. 어떤 판단조차 내릴 수 없었다. 히로미츠는 사고할 틈도 없이 날아오는 총알을 피해 구석에 숨어야만 했다.



    무전기로 도움을 요청하고 주위를 경계하는데, 휴대폰으로 발신자 불명의 메시지가 연달아 도착했다. 메시지의 내용은 정치인이 아니라 어떤 사람을 죽이라는 지시였으며, 따르지 않으면 네 애인을 죽여버릴 거라고 협박하고 있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웃으며 히로미츠를 배웅하던 아무로는 액정 안에서 무력하게 묶인 채 피투성이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협박범이 보낸 정보 속의 타깃은 히로미츠도 익히 아는 인물이었다. 얼마 전 교도소를 탈출하여 수배령이 내려진 남자였다. 다만, 시민들이 불안해할 것을 염려하여 아직 엠바고가 걸려있었다. 이 정보를 안다는 것은, 경찰의 지인이거나, 아니면 경찰의 보안을 뚫을 정도로 정보력이 뛰어난 자이거나. 혹은 둘 다 이거나.



    아직 어떤 방법으로 교도소를 탈출한 건지 알 수 없고, 더 심각한 문제는 연쇄살인범이라 이대로 두다간 시민들의 희생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현재 서에서는 탈옥범 문제에 관련해서 많은 인력을 배정할 수 없었다. 사안의 중요성을 따질 수는 없겠지만, 높으신 분들의 명령에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은 일개 형사에게 주어지는 종류가 아니었다.



    다만 내부에서도 심각성을 고려해 생포할 수 없다면 즉시 사살해도 좋다는 명령이 떨어진 상태였다.



    경찰인 내게, 살인을 하라고... 마치 꿈에서 보던 것처럼 구석에 라이플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 스코프를 들여다보면, 너머에 금방이라도 타깃이 보일 것만 같다. 히로미츠는 이 모든 게 너무 잘 짜인 연극 같다는 생각에 섬뜩해졌다.



    때마침 저격수로 사람을 죽이는 꿈을 반복해서 꾸던 차에, 때마침 정치인 테러 제보가 들어오고, 때마침 들어온 폐건물에 자신을 위한 과제처럼 탈옥범을 죽여도 된다고 속삭이는 어떤 악마가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아침 해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태양 아래 선 히로미츠는 습하지도 않은 공기의 밀도에 짓눌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가 발을 디디고 선 옥상 아래 건물 바깥에는 출근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눈을 느리게 깜빡인 히로미츠는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아무로는 눈이 가려진 채 머리에 들이밀어진 총구에 떨며 울고 있었다. 히로미츠가 이 범죄자를 죽이지 않는다면, 그 대가로 아무로의 머리를 겨눈 총이 어디를 쏠지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한 걸음씩 내디뎌 기어이 몸을 아래로 내렸다. 히로미츠의 모든 행동은 너무나 익숙한 일을 하는 것처럼 당연하게 포복하여 라이플의 스코프를 들여다본다. 이전부터 늘 해오던 일을 할 뿐인 것처럼. 그가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 운명인 것처럼. 숨을 고른다.



    히로미츠는 기다렸다. 방아쇠를 당기기에 가장 적합한 때를. 운명의 실을 정확한 자리에 짜여 넣도록 베틀을 움직이는 신의 손길처럼. 그리고 마침내.









    * * *











    오후의 포아로는 단골손님 외에는 조용했다. 갓 구운 빵에서 나는 달콤한 설탕 냄새, 원두가 그라인더에 갈려지는 소리, 머신에서 내려진 에스프레소에서 나는 향긋한 커피 내음까지 잘 짜인 그림 같은 카페 한가운데 아무로는 평온하게 음료를 카운터에 앉은 손님에게 내밀었다.







    "토오루!!!"







    분주하지만 정돈된 일련의 소음을 비명처럼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가로지른다. 아무로는 고개를 갸웃하며 순한 얼굴로 히로미츠를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하얀 반소매 셔츠에 발목을 덮는 청바지, 그 위의 포아로 고유의 시그니쳐인 앞치마까지. 아무로는 다급하게 달려온 탓에 숨을 헐떡이는 히로미츠를 향해 카운터 밖으로 나와 다가섰다.



    힘껏 그 몸을 안으면 내내 주방에서 일하던 탓에 설탕 단내가 베인 몸이 히로미츠의 품에 안겼다. 여자처럼 부드럽거나 말랑하진 않았다. 그러나 그래서 더 안심하고 껴안을 수 있었다. 아무리 히로미츠가 힘을 줘 안아도 단단하게 그를 지탱할 수 있는 남자의 몸.



    히로미츠는 다시 몸을 떼어내 아무로의 얼굴이며 팔을 더듬었다.







    "혹시, 혹시... 수상한 사람이 쫓아오거나 그러지 않았어요?"







    그 말을 하는 히로미츠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세상이 무너질 거란 말을 들은 사람처럼 창백했다. 아무로는 이상한 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웃으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말이에요?"

    "다행, 다행이다..."







    히로미츠는 아무로의 물음에 진심으로 안도했다. 다시 아무로를 끌어안는 히로미츠는 이제 더 바랄 게 없었다. 동시에 히로미츠의 어깨에 아무로의 얼굴이 파묻히는 바람에, 아무로의 눈이 순식간에 차가워지고 입꼬리가 싸늘해지는 것을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임무는 실패였다. 히로미츠가 탈옥범의 머리가 아닌 다리를 쐈기 때문에. 이 세계의 히로미츠는 아무래도 경찰로서의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도 이젠 괜찮았다. 곧 히로미츠에게 보안국으로 인사이동을 발령하도록 만들었다. 그곳에서 히로미츠는 버번이 공들여만든 조직에 잠입하게 되어, 두 손가락은커녕 셀 수도, 기억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살인을 하게 될 것이다.







    "스카치. 왜 그런 걱정을 해요. 내가 버번인데."

    "응... 맞아. 내가 왜 그랬지..."

    "피곤한가 보다. 오늘도 완벽했어요. 역시 스카치야."







    흐린 눈으로 웃는 히로미츠의 눈동자에는 아무런 의지도 비치지 않는다. 몇 달 동안 공들여 세뇌를 진행해 온 덕에, 재설정된 히로미츠의 뇌는 이제 버번이 스카치라 부르면 그가 살던 세계의 스카치와 동일한 인물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러니 오늘 실패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스카치가 아니라 히로미츠가 실수한 것이니까.



    버번은 이전 세계의 조직을 건설하는 것과 동시에, 미야노 박사를 찾아냈다. 애초 아포톡신은 불로불사가 목적이 아니라 몸에서 특정한 세포의 시간을 되돌리는 것뿐이었고, 미야노 박사의 연구는 거의 성공 단계에 이르렀었다. 다만 조직의 이면을 알게 된 박사가 완성을 거부하여 조직의 원칙에 따라 제거됐을 뿐이었다.



    여기에서 버번은 어떤 가정을 하나 하게 된다. 특정한 세포만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 멈추어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들 수 있다면, 특정한 기억을 일정 시점에서 멈춰 다른 환경을 제공하여 시간을 보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면 어떨까. 이 모든 것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아도 관계없었다. 다만 특정 기억을 이미 존재하는 기억 위에 덧씌우고 싶다고 의뢰했다.



    기억을 덧씌운다고? 미야노 박사는 미친 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웃어제꼈다. 성공할지 못할지 알 수도 없고, 천문학적 비용이 들 것이 뻔한데 그를 위해 투자하겠다는 남자는 미동도 없이 옅은 미소를 띠며 미야노 박사를 보았다.



    그러나 미야노 박사는 괴짜스러운 구석이 있어서, 성공하기만 한다면 사람의 죽음에 치명적 요소가 될 것을 이 실험을 통해 재정립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병의 속도가 진행되었더라도, 몸에 새겨진 기억을 속여 앞으로 남아있는 시간은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들도록 하는 것이. 아내는 몰랐지만 미야노 박사에게는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건 가족을 위한 일이지만 동시에 박사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적어도 두 딸이 온전히 크는 모습만은 지켜보고 싶었으니까.



    결국 미야노 박사는 제안을 수락하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버번은 히로미츠에게 스카치의 기억을 덧씌우게 되었다. 꿈이라고 믿은 히로미츠의 모든 시간들이 다른 세계에서는 실제로 저지른 일들이라고 말한다면, 히로미츠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러나 온전한 성공이 아닌지라, 스카치가 아닌 히로미츠로서 이런 실수를 저지르는 것까진 예측가능한 범위였다.



    어쩔 수 없다. 스카치의 몸을 히로미츠가 제공하고 있으니 마음 넓은 버번이 봐줘야지 않겠는가. 스카치의 어깨에 얼굴을 기댄 버번이 눈을 감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아주 평화롭고 달콤한 오후였다.









    ¹개와 늑대의 시간(드라마,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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